미묘한 시점, 국정원은 왜 ‘발췌록’ 공개했나
입력 2013-06-20 22:27 수정 2013-06-21 01:34
새누리당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발췌본을 단독 열람하면서 꺼져가던 노무현 전 대통령 ‘서해 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 논란이 다시 불붙고 있다. 국가정보원은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여당에 공개하면서 대선 개입 의혹에 이어 또다시 정국의 한가운데 서게 됐다.
◇새누리당, 기습적 단독 열람=회의록 발췌본 열람 논란은 20일 오후 갑자기 터졌다. 새누리당은 예정에 없던 기자회견을 열어 노 전 대통령이 NLL 포기 발언을 직접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서상기 위원장을 포함한 새누리당 정보위원들은 오후 4시5분쯤 국회 정보위원장실에서 국정원이 제공한 회의록 발췌본을 단독으로 열람했다. 민주당은 새누리당의 단독 열람을 전혀 알지 못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서 위원장은 보좌관을 통해 민주당 정보위 간사인 정청래 의원 측에 함께 열람하자고 제안했으나 거절당했다고 반박했다.
민주당은 ‘국정원 대선 개입 물타기’라며 강력 반발했다. 국정원이 대선 개입 의혹으로 야당의 국정조사 요구와 정치권의 국정원 개혁 논의에 직면하자 국면 전환을 위해 다시 NLL카드를 꺼냈다는 것이다.
새누리당이 국정원에 회의록 열람을 신청한 시점도 묘한 해석을 낳고 있다. 서 위원장은 민주당 박영선 국회 법사위원장이 지난 17일 NLL 포기 논란이 국정원과 새누리당이 계획한 시나리오라고 주장하자 논란을 끝내기 위해 회의록 공개를 추진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민주당의 국정조사를 둘러싼 파상공세에 맞서기 위해 회의록 공개를 추진했을 가능성이 있다. 민주당은 국정원이 회의록 열람을 갑자기 허락한 배경도 의심하고 있다. 국정원은 지난해 대선 당시 새누리당의 끈질긴 요구에도 회의록을 공개하지 않았다. 불과 6개월여 만에 태도를 180도 바꾼 것이다.
◇열람 적법성 논란, 판도라 상자 열릴까=서 위원장은 기자회견에서 회의록 열람이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37조 1항 3호에 근거한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 동의가 필요한 ‘대통령 기록물’이 아니기 때문에 여당 단독으로 열람해도 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국정원도 보도자료를 통해 “(열람 허용은) 검찰이 NLL 관련 고소·고발 사건 수사 결과 발표 시 국정원에서 보관 중이던 회의록을 대통령지정기록물이 아닌 공공기록물로 판단했기 때문”이라며 같은 주장을 폈다.
하지만 민주당은 “명백한 대통령 기록물법 위반”이라고 반박했다. 정보위원인 김현 의원은 “정상회담 기록물은 대통령기록관이 아닌 다른 기관에 소장돼 있다고 하더라도 대통령 기록물임이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또 새누리당이 열람한 대화록이 “남북정상회담 진본·원본이 아니라 왜곡, 훼손한 내용”이라고 반발했다.
새누리당은 회의록 전문도 공개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민주당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고, 정상 간의 대화를 공개하는 것은 외교관례에 어긋나는 일이어서 실제 공개될지는 미지수다. 더군다나 박근혜정부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내세운 상황에서 정상간의 대화를 공개할 경우 북한의 격한 비난도 예상된다.
◇여야, “국정원 관련 국정조사 6월 국회 처리 노력”=새누리당 최경환, 민주당 전병헌 원내대표는 오전 국회에서 회담을 갖고 국정원의 대선·정치 개입 의혹 사건과 관련한 국정조사 계획서를 6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도록 노력키로 합의했다. 국정원 개혁을 위한 논의도 즉각 시작하기로 했다.
임성수 유동근 기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