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핵감축 제안에… 푸틴 “핵 전력 강화한다” 냉담

입력 2013-06-20 18:56 수정 2013-06-21 01:43

시리아 문제 해법을 놓고 북아일랜드에서 열린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에서 이견을 보인 미국과 러시아가 핵무기 감축 문제를 놓고도 간극을 좁히지 못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독일에서 양국의 핵탄두 규모를 3분의 1씩 줄이자며 냉전적 안보전략 탈피를 선언했지만 러시아는 냉담한 반응을 보이면서 핵전력 강화방침을 거듭 표명했기 때문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19일(현지시간) “러시아는 전략적 억지력의 균형이 무너지거나 핵전력의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또 핵미사일과 미사일방어(MD) 시스템 등을 포괄하는 공중우주군 육성이 향후 군사력 구축의 핵심 방향 중 하나라고 덧붙였다.

푸틴 대통령은 국방력 강화 프로그램 점검 회의에서 이같이 밝히면서 “효율적 공중우주군은 전략적 억지력의 중추로 앞으로도 공중우주방어 전력을 강화해 나갈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한마디로 핵전력이 전략적 억지력의 중추인 만큼 이를 더욱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냉전의 상징인 브란덴부르크문에서 양국의 추가 핵감축을 제안했지만 이를 몇 시간 만에 차갑게 외면한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초인 2009년부터 ‘핵 무기없는 세상’을 비전으로 제시한 바 있다.

이와 관련, 세르게이 라브코프 외무부 차관은 “다른 국가가 핵과 미사일 전력을 확대하는 상황에서 양국만이 무한정 핵무기 감축 합의를 할 수 없다”며 “다자 군축 협상을 할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는 공중우주군 현대화를 위해 전체 군 현대화 비용의 20%에 달하는 3조4000억 루블(약 120조원)을 쏟아 부을 계획이다. 이를 통해 2015년까지 공중우주군 보유 무기의 50%를, 2020년까지는 70%이상을 현대화한다는 생각이다.

러시아는 미국의 제안이 첨단무기 분야의 우위를 유지하기 위한 술책에 불과하다는 시각을 갖고 있다. 특히 미국이 러시아를 겨냥해 미사일방어(MD)체계를 구축하고 이를 강화하는 상황에서 핵전력마저 감축에 돌입하는 것은 러시아의 핵 억지력 약화로 이어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도 20일 “국방력의 전략적 균형에는 MD 시스템과 같은 방어 무기와 미국이 개발하고 있는 전략적 비핵무기도 영향을 미친다”며 “러시아는 전략적 균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모든 요소를 고려해 대화를 진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모스크바 카네기센터의 마리아 리프먼 연구원은 “MD구축 등 양국의 견해차가 해소되지 않는 상태에서 러시아가 진지한 대화에 나설 가능성은 적다”면서 “오바마 대통령의 일방적인 제안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오바마 대통령은 1963년 ‘나는 베를린 시민이다’라며 명연설을 남긴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독일 방문 50주년을 의식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케네디 전 대통령이 연설 내내 ‘자유’를 강조해 베를린 시민의 가슴을 뛰게 했듯이 이번에는 ‘정의로운 평화’(Peace with Justice)를 강조했다. 또 연설에 앞서 재킷 상의를 벗는 등 소탈한 모습도 보였다. 그러나 대선 후보 시절이던 2008년 베를린 연설 때 20만명의 군중이 운집한 것과 달리 이번엔 4500여명만 연설을 ‘관람’해 그의 인기 하락을 실감케 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이제훈 기자 parti98@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