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이혼할 때 부부가 진 빚도 나눠야” 첫 판결
입력 2013-06-20 18:07 수정 2013-06-20 22:29
부부가 이혼하게 되면 재산뿐 아니라 빚도 나눌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박병대 대법관)는 20일 ‘남편의 선거자금과 생활비 등을 마련하느라 진 빚을 나눠 지게 해 달라’며 아내 A씨(39)가 남편 B씨(43)를 상대로 낸 이혼 및 재산분할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대구가정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빚을 진 이유를 따져본 뒤 남편에게 일정 책임이 있다면 빚도 적절한 방법으로 나눠야 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이 이혼하는 부부의 빚을 분담하라고 선고한 것은 처음이다. 그동안 법원은 원칙적으로 재산에 대해서만 분할을 선고했다. 앞으로 일선 법원은 이 판결에 따라 부부의 채무에 대해서도 분할을 선고할 것으로 보인다. 법원 관계자는 “부부가 진 빚 전부를 항상 분할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부부 공동생활로 인해 진 빚은 반드시 분할해야 한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단지 부부의 합산 재산이 빚보다 적다는 이유로 재산 분할을 허용하지 않는 것은 재산 분할의 법리를 오해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빚을 나눌 때 재산 형성에 대한 기여도 등에 근거해 일률적인 분할 비율을 정해야 한다는 취지는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즉 빚을 진 경위, 생계유지 방식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분담해야 한다는 의미다.
2001년 B씨와 결혼한 A씨는 진보정당 활동을 하던 남편을 대신해 개인과외 등을 하면서 살림을 꾸렸다. 정당 지역위원장을 맡기도 했던 남편의 선거자금과 정치활동비 등을 대기 위해 가족과 지인들에게 2억7600만원을 빌렸고 보험금을 담보로 3000만원을 대출받았다. 하지만 남편은 외도를 했고 2008년에는 아예 집을 나갔다.
남편은 이듬해 새 삶을 시작하겠다며 A씨를 상대로 이혼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A씨는 남편을 상대로 위자료를 청구하고 빚 청산을 위해 2억원을 달라고 맞소송을 냈다. 소송 제기 당시 두 사람의 재산을 합해도 빚만 4000만원 가까이 됐다. 1·2심은 남편의 잘못을 인정해 아내에게 위자료 5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했지만 빚 분담은 허용하지 않았다.
다행히 이날 대법원 선고로 A씨는 이 빚을 남편과 나눌 수 있게 됐다. 하급심 법원이 빚의 책임을 남편에게 크게 둘수록 B씨의 분담 액수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공동생활로 인해 진 빚을 나눈다는 면에서 실질적 공평을 지향한 것으로 평가된다. 또 대출을 통해 재산을 늘리는 경우가 많은 현실도 앞으로 이혼 부부의 재산 분할에 반영될 수 있다.
그러나 대법관 13명 중 이상훈 김소영 대법관 2명은 반대 의견을 냈다. 두 대법관은 “채권자가 존재하는 빚을 법원의 심판으로 청산하는 것은 법적 분쟁의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또 여전히 전업주부 여성이 다수인 상황에서 남편의 실직이나 사업 실패로 진 빚을 아내가 떠안는 부작용을 우려했다. 외국의 경우 미국, 프랑스 등은 이혼 시 채무 분할을 허용하나 일본은 아직 허용하지 않고 있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