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피해자 트라우마, 정신적 상해는 전치 몇 주 일까

입력 2013-06-20 18:07

성폭행 피해자가 받은 정신적 트라우마는 ‘전치 몇 주’에 해당할까. 법원과 학계가 성폭행 피해자의 정신적 상해 정도를 객관적으로 계량화하기 위한 합동 연구에 들어갔다.

서울중앙지법(법원장 황찬현)과 연세대 법·심리과학 융합연구센터(센터장 박상기·김민식)는 20일 연세대에서 ‘강간치상죄의 정신적 상해 정량화 문제’를 주제로 전문가 좌담회를 개최했다. 최근 성폭행 피해자의 육체적 상처뿐만 아니라 정신적 상처도 상해로 인정해 강간치상죄로 의율하는 경우가 늘면서 이에 대한 기준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발표자로 나선 서울중앙지법 천대엽 부장판사(형사29부)는 “상해 사실 인정 여부는 피고인의 처벌에 큰 영향을 미친다”며 “외상의 경우 상해의 정도를 비교적 쉽게 잴 수 있지만 정신적 상해는 피해자의 주관적 호소 외에는 객관적으로 계량할 기준이 없어 판단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일선 재판부들은 판결에 애를 먹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9부는 지난해 10월 하우스메이트를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A씨에 대해 강간치상죄를 적용해 징역형을 선고했다. 반면 같은 재판부는 지난 4월 후배 여대생을 성폭행하려다 미수에 그친 혐의로 기소된 B씨에 대해서는 강간치상죄를 적용하지 않았다. 두 사건 모두 피해자들이 정신적 상해를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명확한 기준이 없다는 이유로 피해자가 호소한 고통의 정도와 치료기간 등을 고려해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