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간토 조선인 학살 은폐 90년 정부·국회, 진상규명 특단 조치를”… 1923 시민연대, 호소문 발표
입력 2013-06-20 17:57 수정 2013-06-20 21:13
일본의 1923년 간토(관동) 대지진 당시 벌어진 조선인학살의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재일 한국인들의 긴급호소문이 발표됐다.
한국기독교장로회가 20일 서울 충정로2가 총회교육원에서 개최한 ‘간토 조선인학살 90주기 심포지엄’에 참가한 재일 한국인들과 ‘1923 한·일·재일 시민연대’ 관계자들은 ‘재일동포들의 긴급호소문’을 발표하고 ‘1923 간토 조선인학살 진상 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정을 요청했다.
이들은 호소문에서 “최근 동아시아는 점점 더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상황에 놓여 있다”며 한국 국회는 특별법을 조속히 제정하고 한국 정부는 조선인학살 관련 자료에서 발견된 60여명의 실명과 원적을 조사해 유족을 찾을 수 있도록 조속히 조사에 나서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교과서 기술 등을 통해 한국 청소년들에게 사건의 진상을 가르쳐야 한다고 당부했다.
강덕상 일본 시가현립대 명예교수는 이날 주제강연에서 “당시 대학살이 발생한 것은 조선인을 ‘적’으로 간주한 계엄령이 발령됐기 때문”이라며 “당시 자료에 따르면 일본군은 가랑이를 찢거나 철사로 목을 조르는 등 잔인한 방법으로 복종을 표명한 200명의 조선인 노동자에게 잔학행위를 자행했다”고 밝혔다.
강 교수는 “이 같은 행위가 가능했던 것은 ‘조선인은 적(敵)’이라는 의식을 갖고 출동한 계엄군의 지휘 아래 일본 관·민이 조선인 사냥을 자행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구한 말 이래 선전포고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던 한·일 관계의 연장선상에서 이같은 의식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간토 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건은 1923년 일본의 도쿄 등 간토지역에 대지진이 발생하자 당시 일본 군대와 경찰, 민간인 등이 재일 조선인을 학살한 사건이다. 당시 일본에서는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켰다’는 근거 없는 소문이 퍼지면서 긴급 칙령으로 계엄령이 선포됐다. 계엄령 선포 후, 조선인 폭동 단속령에 따라 조직된 자경단이 6000여명의 조선인과 일본인 사회주의자를 살해했다.
최승욱 기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