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엽 “한반도가 통일 되는 길은 기독교적 방법밖에 없다”

입력 2013-06-20 17:57 수정 2013-06-20 21:13


‘황장엽 전 비서의 신앙 이야기’ 증언 잇따라

2010년 사망한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가 생전에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였다는 증언이 나왔다. 주선애(89) 장신대 명예교수는 20일 본보와 인터뷰를 갖고 황 전 비서가 생전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인 사실을 공개했다. 평양이 고향인 주 교수는 황 전 비서를 2002년쯤 처음 만났다.

여고 동창모임에서 동향 출신이면서 주 교수보다 한 살 많은 황 전 비서를 만나보자는 이야기가 나온 것. 주 교수는 황 전 비서를 만난 뒤 안가에서 쓸쓸히 사는 그를 도우며 전도하기로 결심했다. 황 전 비서는 사망하기 전날인 2010년 10월 9일까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매일 오전 8시30분쯤 주 교수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전했다.

주 교수는 “황 선생님이 생전에 신앙고백을 한 것도 아니고, 세례를 받은 것도 아니고, 교회에 출석한 것도 아닌데 자꾸 뭔가를 감추는 것만 같았다”면서 “어느 날 직접 기도하는 장면을 지켜보고 ‘거짓 믿음은 아니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주 교수에 따르면 황 전 비서는 2006년쯤 당시 생존해 있던 하용조 온누리교회 목사가 서울 아산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병문안을 갔다가 하 목사로부터 기도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주 교수는 그때 황 전 비서의 육성 기도를 처음 들었다. 그는 “황 전 비서는 ‘하나님 아버지’로 시작해서 마지막에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면서 기도를 마치더라고요. 아주 매끄럽게”라고 말했다.

황 전 비서는 생전에 한반도가 통일되는 길은 기독교적인 방법밖에 없다며 줄곧 이야기해 왔다는 사실도 주 교수는 소개했다.

북한기독교총연합회 회장인 임창호(부산장대현교회 담임) 목사도 이날 황 전 비서의 신앙 이야기가 담긴 동영상을 CGN TV를 통해 공개했다. 휴대전화로 촬영한 11분 분량의 동영상에는 김현식(81) 조지메이슨대 북한학 연구 교수가 등장한다.

그는 지난달 10일 업무차 방한, 임 목사를 만난 자리에서 “(황장엽 전 비서가 탈북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여기 김현식 선생처럼 앞으로 다 예수 믿어야 한다. 나는 세상이 다 아는 유물론자다. 갑자기 황장엽이가 예수 믿으라고 하면 정신이 돌았구나 할 거다’라고 말했다”면서 황 전 비서의 생전 발언을 소개했다.

김 교수는 북한의 대표적 교수양성기관인 평양사범대(현 김형직 사범대)에서 1950년대 초부터 40년 가까이 러시아어 교수로 근무한 ‘북한의 엘리트’였다. 김일성의 눈에 들어 김일성 처가 쪽 자녀들과 김정일의 가정교사로 활동했다. 그가 황 전 비서를 처음 만난 건 1985년 봄, 러시아 공산당 책임자들이 평양을 방문했을 당시 중앙당 국제비서였던 황 전 비서의 통역을 맡으면서였다.

그들이 재회한 건 97년 황 전 비서가 한국으로 망명한 직후였다. 92년 러시아를 통해 탈북, 서울에 거주하던 김 교수는 2003년 도미(渡美)하기 전까지 황 전 비서와 거의 매일 만나다시피 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가 됐다. 당시에도 황 전 비서는 “김일성 패밀리가 사라지면 북한 사람들의 허무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허무함을 무엇인가로 채워야 한다. 그게 기독교가 돼야 한다”라고 말해왔다고 김 교수는 전했다.

임 목사는 “김일성 주체사상의 뼈대를 만들고 가르치고 전파했던 철저한 유물론자가 복음을 받아들였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한 메시지”라며 “북한주민이나 탈북자들은 신앙을 갖기 힘들다는 편견을 바로잡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박재찬 기자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