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이명희] 누가 펜을 꺾는가
입력 2013-06-20 18:44
“진실을 전하고, 不義를 비판할 자유는 누구도 빼앗아선 안 될 소중한 권리다”
무장한 경호원들이 철통경호를 하고, 외출할 때는 3대의 차량을 번갈아 탄다. 감시자를 따돌리기 위해 어디로 가는지, 언제 누굴 만나는지 스케줄은 수시로 바꾼다. 007 첩보영화의 한 장면이 아니다. 파키스탄 신문 ‘여명(Dawn)’지 편집장 자파 아바스의 평범한 일상이다. 그는 죽을 고비를 몇 차례 넘겼고, 여러 번 도피를 해야 했다. 그나마 그는 회사로부터 보호를 받고 있지만 대다수 언론인들은 상시 위협에 노출돼 있다. 분쟁지역인 파키스탄의 기자들에게는 죽음이 멀리 있지 않다. 지난 13년간 85명 이상 기자들이 살해됐고, 그보다 더 많은 기자들이 납치당하거나 고문을 당했다.
멕시코 토레온 지역의 일간지 ‘엘 시글로 데 토레온’은 마약갱단에 수시로 습격을 당하고 있다. 지난 2월에도 무장괴한들의 총격을 받아 5명이 납치됐다. 연방경찰이 신문사 밖에 무장경비원을 배치해놓았지만 속수무책이었다. 그래서 이 신문사는 기자들의 안전을 위해 몇 가지 가이드라인을 정해놓고 있다. 경찰이 먼저 현장에 도착해 사건을 진압한 뒤 취재현장에 가고, 공식적인 총격사건만 보도하며 특정 기자에게 공격이 가해질 것을 피하기 위해 바이라인(기사를 쓴 기자 이름)을 달지 않는 것 등이다.
얼마 전 태국 방콕에서 열린 제20회 세계편집인포럼 및 제65회 세계신문협회 총회에서 연사들의 생생한 경험담을 들으며 내가 보고 취재한 것을 쓸 수 있는 ‘자유’의 소중함을 새삼 느꼈다. 광고주 압력으로 열 받는 일은 있어도 내가 쓴 기사나 기자라는 직업 때문에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일은 없으니 말이다. 세계신문협회가 행사 마지막 날 발표한 ‘세계언론자유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6월부터 올해 5월까지 시리아에서 최소 15명, 소말리아에서 10명 등 54명의 언론인들이 목숨을 잃었다. 죽음을 무릅쓰고 진실을 전하기 위해 사선으로 달려가는 이들이 있기에 그래도 역사는 발전하고 민주화의 봄은 오는 것이리라.
우리에게도 그런 암흑기는 있었다. 1960∼70년대 박정희 정권은 언론기관 일제 정비와 ‘지방신문 1도 1사(一道一社)’ 원칙에 따라 통합을 추진했고, 1980년 신군부는 언론통폐합, 정기간행물 폐간조치와 함께 1000여명의 기자들을 해직시켰다. 신문이 인쇄되기 전 최종 대장을 청와대에 보내면 빨간 줄이 ‘죽죽’ 그어져 내려왔다는 얘기도 선배들로부터 전해진다. 이른바 사전검열이다. 신군부가 언론사의 정치적 성향을 분석한 뒤 계엄 상황에서 언론사주에게 포기각서를 쓰게 하고, 거부하면 권총으로 위협했다는 사실이 2010년 과거사정리위원회 조사결과 밝혀지기도 했다. 정권에 비판적인 언론인 중 일부는 삼청교육대로 끌려가고, 취업을 제한당하기도 했다.
1987년 6·29선언으로 민주화와 언론자유화가 이뤄진 지 26년이 지났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언론자유 수준은 여전히 낮다. ‘국경 없는 기자회(RSF)’가 평가한 올해 언론자유지수는 조사대상 179개국 중 50위로 지난해보다 6단계나 떨어졌다. 권력의 입맛에 맞춘 언론들은 번성하고, 성역 없이 전가의 보도를 휘두른 언론들은 수난을 겪어온 우리 언론의 불편한 진실에 대한 엄정한 평가일 것이다.
59년 역사를 지닌 한 일간신문사에선 경영진이 편집국을 봉쇄하고 170여명 기자들을 길거리로 내쫓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수십 년 기자생활을 한 논설위원들까지 사측이 만드는 ‘쓰레기 종이뭉치’에 글을 쓸 수 없다며 펜을 내려놓았다. 글 쓰는 즐거움을 강제로 빼앗긴, 진실을 얘기하고 불의(不義)에 대해 비판하고 싶은 ‘자유’를 빼앗긴 기자들의 심정이 어떠할지 가늠이 된다.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화와 언론자유화를 외쳤던 선배들은 역사의 시곗바늘을 뒤로 돌려놓은 오늘날의 언론 현실을 보면 뭐라 할까. 1775년 ‘자유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했던 미국 독립운동가 패트릭 헨리의 말은 요즘도 유효하다.
이명희 논설위원 mh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