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맹경환] 에로틱 공화국
입력 2013-06-20 18:41 수정 2013-06-21 01:53
얼마 전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FP)의 홈페이지에 올라온 글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에로틱 공화국. 자연스럽게 클릭을 했다. 에로틱 공화국이 바로 강력한 신정정치를 바탕으로 이슬람 근본주의를 대표하는 국가 이란이라는 주장에 흥미는 증폭됐다.
요즘 테헤란을 방문하고 온 서양인들은 빠르게 변하고 있는 이란의 성 문화에 놀란다고 한다. 1990년대 초반만 해도 매춘은 은밀히 이뤄졌지만 지금은 매춘부의 거리 호객 행위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호스트 바에서 쾌락을 즐기는 여성들도 늘고 있다.
이란 정부의 공식 통계에 따르면 대다수 남성은 결혼 전 이미 한 차례 이상의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다고 인정했고, 이 중 13%는 원치 않는 임신과 낙태로 이어졌다. 한 세대 전만 해도 상상도 못할 일이라고 한다.
젊은이들은 결혼을 늦추고 아이도 적게 낳는다. 평균 결혼 연령은 지난 30년 동안 남자는 20세에서 28세로 높아졌다. 여성들은 보통 24∼30세에 결혼하는데 10년 전에 비해 5년이 늦춰졌다. 이로 인해 1986년 3.9%였던 인구증가율은 지난해 1.2%로 떨어졌다.
이혼 부부는 2000년 5만쌍에서 10년 만에 15만쌍으로 늘었다. 현재 7쌍 중 1쌍 꼴로 이혼하고 있는데 영국 등 서방 선진국들과 비슷한 수치다.
1979년 이란 혁명으로 정권을 잡은 호메이니는 개인과 공공을 막론하고 이슬람 율법을 강조해 왔다. 지극히 개인적인 성생활까지도 율법이라는 이름으로 간섭했다. 34년이 흐른 지금 호메이니의 후계자들은 이란을 유토피아로 만드는 데 실패했고 젊은이들은 국가의 억압에 대한 소극적 저항으로 성을 선택했다는 게 ‘에로틱 공화국’ 필자의 분석이다. 최근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중도파 하산 로하니가 이란 대통령으로 당선된 것은 조금 더 적극적인 저항이라고 볼 수 있다.
베네수엘라는 한때 빈민들의 유토피아로 추앙받았다. 정부가 직접 구매해 20∼30% 싸게 판매하는 국영 슈퍼마켓 메르칼은 우고 차베스 정권의 히트 상품 중 하나였다. 2003년부터 시작된 메르칼은 국민들을 기아에서 벗어나게 만들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99년 차베스가 집권할 당시 전체 인구의 15% 이상이 영양부족 상태였지만 현재는 5% 아래로 떨어졌다. 그러나 시장 원리를 거스르는 가격 통제로 인해 국민들은 오히려 고통받고 있는 처지가 됐다. 메르칼에서 싸게 판다고는 하지만 정작 물건을 구할 수가 없다. 어쩔 수 없이 국민들은 10배가량 높은 가격으로 개인 슈퍼마켓을 이용한다. 화장지를 포함해 설탕과 우유, 옥수수 가루 등 생활필수품들이 모두 품귀 상태다.
택시 잡기가 가장 힘든 도시라면 단연 베이징이다. 그동안 중국 당국이 택시 요금을 지나치게 낮게 책정하면서 수익을 맞추기 어려워진 택시들은 자취를 감췄다. 여기에 당국이 택시 면허 발급을 제한하면서 택시 품귀를 부채질했다. 베이징의 인구가 94년 1100만명에서 2011년 2000만명으로 2배 가까이 늘었지만 택시는 6만대에서 고작 6000대 느는 데 그쳤다. 2000년 이후 3㎞에 10위안(약 1800원)으로 변동이 없었던 베이징의 택시 기본요금은 최근에서야 13위안(2340원)으로 인상됐다.
인간이든 시장이든 그것의 욕망을 무작정 통제하려든다면 부작용이 생기고 저항이 있게 마련이다. 한국처럼 택시를 5만대나 구조조정해야 하는 상황까지 내몰릴 정도로 방치해서는 안 되지만 말이다. 어디든 순리가 필요하다.
맹경환 국제부 차장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