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의 비전과 통찰 리더십이 만든 ‘삼성웨이’
입력 2013-06-20 17:06
신경영 선언 20주년 맞아 삼성 관련 서적 쏟아져
삼성의 오너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1993년 6월 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신경영을 선언한 지 20주년에 즈음해 출판가도 삼성 대해부에 나섰다. ‘삼성 웨이’(21세기북스) ‘초일류 삼성의 성공 엔진’(한울아카데미), ‘이건희 개혁 20년, 또 다른 도전’(김영사) 등 삼성 관련 책이 앞 다퉈 출간되고 있다.
삼성은 1990년대만 해도 세계 변방의 보잘 것 없는 기업에서 2010년대 미국의 대기업 애플을 대적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사실 삼성전자가 2000년 시드니 하계 올림픽 때 스폰서로 나섰을 때만 해도 당시 윤종용 부회장은 기자들에게 “삼성의 싸구려 이미지를 벗겠다”고 했을 정도였으니 삼성의 성공사는 가히 압축적이다.
하지만 그런 삼성에 대해 쓰는 일은 우리 사회에선 적잖은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폭로성 고발, 아니면 ‘용비어천가’ 등 양 극단에 위치한다는 평가를 듣기 십상이다. 이 때문에 송재용 이경묵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가 함께 쓴 ‘삼성 웨이’는 경영학이라는 객관적 틀을 통해 삼성의 성공 요인을 분석했다는 점에서 양 극단의 비판에서 어느 정도는 자유롭다.
무엇보다 ‘삼성 웨이’라는 제목이 의미심장하다. 경영학에서는 한 기업이 독특한 경영방식을 활용해 장기간에 걸쳐 높은 성과를 낼 때 경의를 표하는 차원에서 해당 기업의 경영방식 및 시스템을 ‘웨이(Way)’라고 부른다. 미국 제너럴일렉트로닉스(GE)의 ‘GE 웨이’나 휴렛패커드(HP)의 ‘HP 웨이’가 그런 예인데, GE 웨이나 HP 웨이는 오랜 기간 미국 경영학계의 주요 연구대상이었다고 한다. 따라서 삼성 웨이는 삼성의 성공을 학문적 연구 대상 반열에 올려놓겠다는 의도에 다름 아니다.
책은 2011년 세계에서 권위를 인정받는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실린 ‘삼성 부상의 패러독스(The Paradox of Samsung’s Rise)’를 모태로 한다. 한국인 교수의 논문이 실린 것도, 한국 기업을 대상으로 한 논문이 실린 것도 모두 최초였다. 미국 학계가 삼성의 성공에 대한 관심을 공식 인정한 것으로 해석된다.
책은 당시 논문을 크게 확장시켰다. 삼성의 패러독스와 함께 성공사, 삼성 웨이의 리더십과 지배구조 및 성공 시스템 분석, 미래에 대한 전망과 과제 등을 담았다.
저자들이 처음 주목한 건 삼성의 패러독스 경영이다. 대규모 조직이면서 스피디함, 다각화·수직적 계열화로 돼 있으면서 전문화돼 있는 점, 일본식 경영과 미국식 경영 요소가 병존하는 점이 세 가지 패러독스다. 예컨대, 거대 조직임에도 삼성 주력인 메모리 반도체의 경우 개발에서 양산, 출시까지 걸리는 시간이 경쟁사 대비 배 이상 빨랐다. 미국식과 일본식 경영 요소를 혼합해 경쟁자가 모방하기 힘든 방식으로 기업 경쟁력을 창출한 게 ‘삼성 웨이’라는 것이다.
‘이건희 경영학’이라고 부제를 붙인 건 삼성 웨이의 구축에 오너 최고경영자(CEO)가 끼친 영향이 절대적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의 리더십을 ‘비전과 통찰의 리더십’으로 정의하면서 두 저자는 이 회장이 한국 최고경영자(CEO) 가운데 최초로 세계 초일류기업, 조 단위 이익 등 도전적 목표를 제시한 점을 높이 산다.
삼성 웨이 시스템으로는 ‘수치에 의한 관리’를 한 예로 꼽는다. 전사적자원관리(ERP), 공급망관리(SCM)에 대한 초대형 투자를 통해 전 세계 지역별 재고, 주요 매장별 판매량 등이 실시간 파악 가능하고 이를 통해 매주 전 세계 생산 및 판매 법인의 계획을 수립하는 것은 일본의 소니나 파나소닉에서는 볼 수 없는 강점이라고 강조한다.
한국 기업계의 화두는 지속가능성이다. 1938년 대구의 작은 상회가 출발이니 삼성 기업사는 100년이 못된다. 150년 이상의 기업사를 갖는 스웨덴의 발렌베리 등 구미의 전통 있는 기업들에 비하면 한국 기업들의 당면 과제는 100년 이상의 수명일 것이다. 기본적으로 긍정적 태도를 취하는 두 저자는 이 질문에 대해서도 긍정적이다. 갈수록 제품의 수명주기가 단축되는 기업 환경에서 삼성의 스피드 경영의 장점이 부각될 수밖에 없고, 다른 세계적 기업이 삼성 웨이를 모방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학문이라는 잣대를 쥔 이 책은 삼성을 바라보는 긍정과 부정의 양 시선 중 부정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어떤 해석을 내릴까. 79개 계열사를 가진 삼성그룹과 관련해 최대 주주 가족의 핵심 계열사 소유와 순환 출자 구조에 대해서는 언급한다. 그러면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시민단체들의 철저한 감시·감독 때문에 소유 경영자가 소액주주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드러내놓고 하기가 어렵다고 본다.
최종적으로는 삼성에 대해 쏟아지는 부정적 시선을 비켜가지는 않는다. 이는 초국적 기업으로의 변신, 공생의 비즈니스 모델 구축, 개방적 문화 창달 등 아주 건조한 용어로 정리한 삼성 웨이의 과제 부분에 담겨 있다. 그 실천 방안으로 언급한 ‘사랑받는 기업상 구축’과 ‘개인존중문화 강화’는 아주 건조한 단어이면서도 울림을 던진다.
컨설팅회사인 세븐앤파트너스가 기획한 ‘초일류 삼성의 성공 엔진’은 진보 성향 출판사에서 냈다는 점에서 일단 눈길을 끈다. 경영 전략 차원의 접근법은 ‘삼성 웨이’ 책과 비슷하며 나열식이다. 10명의 공저자 중 상당수가 삼성 출신이다. ‘이건희 개혁 20년, 또 다른 도전’은 삼성을 취재했던 기자가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성공사를 다뤄 편하게 읽힌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