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다수의 힘, 거대 권력을 흔들다
입력 2013-06-20 17:38 수정 2013-06-20 16:01
거대 권력의 종말/니코 멜레/RHK
수년 전, 미국 하와이의 폴리할레 주립공원을 관통하는 도로가 파손됐다. 하지만 주 정부의 의사결정 및 집행 체계는 너무 느려서 보수 작업에 착수하기까지 2년이 소요되는 상황이 연출됐다. 공원을 찾는 관광객 수입에 절대 의존하는 지역 상인들은 애가 탔다. 결국 스스로 자금을 마련해 직접 도로를 보수했다. 그 결과, 도로는 단 8일 만에 복구됐다.
전통적인 거대 권력기관의 권위와 기능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운동이 정부 기능을 대신하는 이와 비슷한 사례는 주변에 널려 있다. 2010년에는 온라인 폭로 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의 미국 기밀 폭로로 미 정부가 패닉에 빠지기도 했다.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은 빠른 전파력으로 거대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비웃는다. 트위터는 정통 언론매체보다 더 빨리 홍수 피해 속보를 전한다.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는 특정 후보를 널리 알리고 정치기금을 모으는 방법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정보기술(IT) 미래학자 니코 멜레 미국 하버드케네디스쿨 교수는 인터넷, 트위터 등 IT기술이 언론과 정당, 정부, 군사력, 엔터테인먼트 거대 산업 등 전통적인 기관의 근간을 흔들어놓는 작금의 상황을 ‘거대 권력의 종말’로 정의 내린다.
기술의 진보에 대해서는 긍정과 부정 양면의 시각이 공존한다. 멜레 교수는 부정적 측면에 더 우려를 보내는 것 같다. 언론을 예로 들어보자. 트위터로 인해 거대 언론이 힘을 잃으면서 끈질긴 노력과 많은 비용이 소요되는 탐사 보도와 책임감 있는 저널리스트들이 눈에 띄게 줄어드는 현상은 어떻게 할 것인가.
말하자면, 인터넷이 가져온 ‘급속한 연결성’을 발판 삼아 작은 다수의 힘이 모여 거대 권력을 흔들고 있으나 어느덧 그 스스로 또 하나의 권력이 되기 시작했음을 저자는 우려하는 것이다. 디지털 시대, 다윗이 어떻게 새로운 골리앗이 되어 가는지를 풍부한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멜레 교수는 골리앗을 겨냥한 다윗이 지켜야 할 마지노선을 제시한다. 그 어떤 첨단기술이라도 거대 권력을 붕괴시키는 과정에서 민주주의 가치인 정부의 기능, 정당한 법 절차, 자유시장, 종교 언론 출판 집회의 자유 등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새로운 골리앗의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기관과 메커니즘을 제시한다. 이는 전통과 기술이 서로 돕는 상생의 모델이다. 언론 분야만 보면, 영국 가디언의 크라우드 소싱(기자가 아닌 일반인들의 노동력 제품 콘텐츠 등을 활용하는 것) 실험이 성공 사례다. 가디언은 2009년 200만 쪽이 넘는 의회 의원 경비 지출 보고서를 입수한 후 이를 온라인에 공개해 독자의 검토를 요청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사이트 방문객 중 56%가 참여해 80시간 만에 17만 쪽을 검토한 것이다.
이처럼 정부, 엔터테인먼트, 군사, 정당, 기업 등 각 분야별로 상생 사례가 제시된다는 게 책의 미덕이다. 저자는 중·고등학교 시절을 한국에서 보냈으며 책의 영감을 한국의 성장사에서 얻었다고 한다. 이은경 유지연 옮김.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