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지 않는, 자연으로 돌아가는 여행
입력 2013-06-20 17:24 수정 2013-06-27 17:51
정호승 11번째 시집 ‘여행’
정호승(63)의 신작 시집 ‘여행’(창비)은 시인이 밝혔듯 지난해 등단 40년이 된 것을 스스로 기념해 묶은 11번째 시집이다. 햇수로는 3년 만이다. 시인은 아버지의 임종을 앞두고 있다. 아버지가 돌아오지 못할 여행을 준비 중이다. 그래서인지 시집엔 떠남만 있고 돌아옴이 없는 여행의 행로가 유난히 자주 등장한다.
“울지는 말아야지/ 아버지가 실눈을 떠 마지막으로 나를 바라보시면/ 활짝 웃어야지/ (중략)// 가시다가 뒤돌아보지 않으셔도 된다고/ 굳이 손을 흔들지 않으셔도 된다고/ 가시다가 중국음식점 앞을 지나가시더라도/ 짜장면을 너무 드시고 싶어하지 마시라고/ 아니, 짜장면 한 그릇 잡수시고 가시라고/ 말해야지”(‘아버지의 마지막 하루’ 부분)
짜장면을 유독 좋아했던 아버지. 병상에 누운 아버지와 시인은 눈을 마주친다. 창밖에 봄눈이 내리던 날이었다. 임종이 가까웠기에 시인이 하는 수 없이 짜장면 대신 귤 한 조각을 아버지의 입에 넣어준 게 전부였다. 그리고 어느 날 시인은 아버지가 먹지 못한 짜장면을 앞에 두고 있다. “나는 오늘 봄눈을 섞어 만든 짜장면 한 그릇/ 봄의 식탁 위에 올려놓고 울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짜장면 한 그릇/ 먹고 싶어한 아버지를 위하여/ 봄눈으로 만든 짜장면을 먹고/ 넘어졌다 일어선다”(‘북촌에 내리는 봄눈’ 부분)
그동안 시집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 등을 통해 눈물의 시인이라고 불렸던 정호승은 이제 ‘울지 않는 시인’으로 거듭난다. 이를 두고 문학평론가 김영희는 “그의 시에 슬픔이 사라져서가 아니라 그의 서정이 자연의 섭리를 닮아 ‘자연성’을 내면화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시집의 궁극적인 테마는 ‘자연으로 돌아가는 여행’이라고 할 것이다. 표제 시는 이 테마를 가장 잘 드러내 보인다. “사람이 여행하는 곳은 사람의 마음뿐이다/ 아직도 사람이 여행할 수 있는 곳은/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의 오지뿐이다/ 그러니 사랑하는 이여 떠나라/ 떠나서 돌아오지 마라”(‘여행’ 부분)
모든 걸 내려놓고 떠나는 여행, 가진 걸 모두 버리고 떠나는 여행. 돌아오지 않는 여행을 떠나는 사람의 손은 비어 있다. 정호승이 말하는 빈손의 의미를 보여주는 시가 있다. 기왕에 아버지가 좋아하던 짜장면이 등장했으니 다시 짜장면이다. “개에게 짜장면을 사주었다/ 배가 고프면 고플수록 내가 개밥을 먹고/ 내가 세상에서 가장 먹고 싶었던/ 짜장면을 개에게 사주었다/ 기쁘다/ 눈부신 햇살 아래/ 짜장면을 맛있게 먹는 개들이 아름답다(‘오늘의 기쁨’ 전문)
짜장면은 개가 먹었는데, 시인은 배가 부르다. 아버지와 시인과 개 사이에 놓여 있는 것은 그래서 짜장면이 아니라 한 그릇의 숭고미이자 존재의 궁극일 것이다. 모든 존재들은 돌아오지 않는 여행을 떠날 수밖에 없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