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갈수록 더 선명해지는 사랑의 본질
입력 2013-06-20 17:25
등단 50년 맞은 이수익 시집 ‘천년의 강’
늙어갈수록 더욱 선명한 색채를 드러내는 게 있다. 예컨대 사랑의 본질 같은 게 그것이다. “좀 떨어져서/ 지낼 필요가 있다/ 약간 떨어진 곳에서/ 바라보는, 숨 막히는 진실이 필요하다/ 내 입술과 그대 입술이 맞닿은/ 순간의/ 마비되는 설렘을 어쩌지 못하면서도 끝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그 사이,// 사이에 우리가 놓여 있다”(‘짐’ 부분)
올해 등단 50년을 맞은 이수익(71) 시인의 11번째 시집 ‘천년의 강’(서정시학)은 뜨거운 목마름과 야성적 본능으로 상징되던 젊은 시절의 사랑이 아니라 사랑의 본질인 ‘사이’에 관한 시편들이 눈에 띈다. 그는 시집 뒤에 붙인 산문 ‘시작(詩作) 50년의 회고’에서 “(이번 시집은) 나에게 지나치게 많은 것도 아니면서, 또는 지나치게 모자란 것도 아닌 중용의 시학을 다시 모색해 보자는 것”이라고 썼다. 중용의 시학이란 바로 ‘사이’를 지칭하는 것이리라. ‘사이’의 시학은 이렇게 변형되기도 한다.
“내부를 활활 태웠다/ 어서 빈칸을 만져 보아라/ 하얗게 일어선 몸, 그렇다/ 모두 빈칸이다/ 두 눈도, 주름 잡히던 이마도. 대퇴골도,/ 허벅지도/ 까마득하게 만져지는 가루, 가루, 가루다// 오, 내가 미칠 듯 사랑했던/ 당신!”(‘수도(修道)’ 전문)
사랑의 또 다른 본질은 ‘비어있음’이요, ‘까마득하게 만져지는 가루’라는 것인데 이는 청춘남녀들 사이에서 불붙듯 타오르는 정념의 사랑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경지일 것이다. 노경(老境)에 이른 시인이 ‘죽음’을 생각한다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겠으나 그는 죽음마저도 중용의 입장을 내비친다. “마침내- 라고 부를 최후의 순간이/ 빨리 다가왔으면/ 좋겠다// 더불어 그도, 그와는 다른 세상을 노리는 이들도 함께 파멸하는/ 흐리멍덩한 세상이 어서 오기를/ 기다리면서// 그는 오늘도 늙어간다, 참으로 오래된 날이 지루하다”(‘새로운 놀음’ 부분)
겉으로 드러나는 설익은 객기와 격정을 찾아볼 수 없으니 이런 걸 두고 나이 드니 참으로 편안하다고들 말하는 것일 게다. 하지만 강하게 벼려진 내적 에너지는 여전히 용맹하고 청청하다. “대형 덤프트럭은/ 25.5톤이다/ 깔려서 죽은 사람만이/ 기막힌, 그 맛을 안다./ 열여섯 개의/ 수컷처럼 불거진 큼지막한 차바퀴가/ 뿜어내는/ 불가항력의 힘,/ 거대한 장악력으로 전면을 향하여 돌파하는/ 불굴의 정신을/ 차마 막아낼 수 없었던 자만이 그 맛을 안다”(‘젊은 시인에게’ 부분)
절정의 순간에 끝 간데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며 최후의 언어를 취하는 투신(投身)의 시가 부족한 우리 시대에 칠순의 시인은 젊은 시인들의 정수리를 때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수익의 시는 살아있고 노경의 물 속에서도 지지직거리며 불타오른다. 시를 사랑하는 자는 늙지 않는다. 그게 가능한 것은 역설적으로 시 자체가 갖고 있는 방부제 같은 마성 때문일 터이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