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대면 ‘뚝’ 하고 부러지는 장마철 골칫덩이 ‘憂산’ 스트레스

입력 2013-06-19 18:20 수정 2013-06-19 22:11


“우산 좀 고쳐주세요.”

19일 서울 양재동 양재종합사회복지회관 우산수리센터. 오전 10시가 넘어서자 고장 난 우산을 들고 주민들이 하나둘 찾아왔다. 도곡동에 사는 최성녀(65·여)씨는 “백화점에서 샀는데 수리할 데가 없어 수소문 끝에 찾아왔다”며 가방에서 연두색 양산을 꺼냈다. 수선기술자 윤모(49)씨는 양산을 살피더니 “마침 부품이 있네요”라며 빠른 손놀림으로 지지대 손잡이부터 해체했다. 양산 살에 묶여 있던 철사를 이리저리 돌려 빼내고 고장 난 부품을 갈아 끼웠다. 다시 태어나는 양산을 지켜보며 최씨는 소녀 같은 미소를 지었다. 수선은 5분 만에 끝났고 수리비는 무료였다.

장마가 시작됐다. 1년 중 우산이 가장 필요한 장마철은 우산이 가장 많이 버려지는 때이기도 하다. 들고 나갔다 잃어버리고, 고장 나서 버리고, 예쁜 새 우산을 산 김에 헌 우산을 버린다. 우리나라에서 한 해에 유통되는 우산은 3000만∼5000만개. 국민 1명이 1개씩은 새 우산을 사는 셈이다. 대부분 주문자상표부착방식(OEM)의 중국산이다.

우산은 재활용이 어렵다. 10여년 전만 해도 고물상 등에서 쇠로 된 우산살을 모아 고철로 처리했지만 최근엔 플라스틱이나 유리섬유강화플라스틱(FRP) 살이 많아 그냥 쓰레기가 된다. 녹색소비자연대 관계자는 “버려지는 우산을 돈으로 환산하면 엄청난 액수”라며 “실생활에서 무심코 벌어지는 낭비와 반(反)환경의 대표적 사례”라고 했다.

서울에 몇 곳 안 되는 우산수리센터는 이런 낭비에 맞서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다. 서초구청이 위탁 운영하는 양재동 수리센터에는 하루 평균 50여명이 찾아온다. 장마기간에는 최대 200명까지 몰린다. 사회복지사 송다다(29)씨는 “수리센터가 별로 없다보니 다른 지역 주민은 물론이고 심지어 거제도와 제주도에서도 택배로 고장 난 우산을 보내는 사람이 있다”고 말했다. 2010년에는 5118명, 2011년 5923명, 2012년엔 7183명이 이 수리센터에 다녀갔다. 현재 서울 서초구·종로구·은평구·강동구와 경기도 안양시 등이 우산수리센터를 운영중이다.

우산은 실이 끊어지거나 살 부러지거나 못이 빠지는 고장이 가장 많다. 윤씨는 “끊어진 실을 다시 묶고 우산대에 못을 끼워 펜치로 잘 눌러주면 누구나 수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수입된 우산은 모두 2444만 달러(약 276억원)어치였다. 이는 정상적으로 수입되는 경우이고, 원가가 1700원 정도에 불과한 저가 우산은 통계에 잡히지 않은 채 유통되는 경우가 많다. 시중에서 팔리는 우산의 70%, 쉽게 고장 나 버려지는 우산의 상당수가 이런 저가 우산이다.

품질이 낮은 저가 우산 때문에 분통을 터트리는 소비자들도 적지 않다. 대학생 김현경(23·여)씨는 “얼마 전 지하철역 매점에서 5000원 주고 샀는데 몇 번 폈다 접으니 살이 부러졌다”며 “워낙 불량품이어서 고칠 수도 없어서 그냥 버리고 새로 구입했다”고 말했다.

녹색소비자연대 조윤미 대표는 “한번 쓰면 고장나는 저가 우산은 웬만하면 사지 말고, 미리 품질이 좋은 걸로 구입해 사용하고 고장나면 고치는 게 훨씬 효율적”이라며 “지방자치단체가 우산 수리센터를 늘리고 비즈니스모델을 만들면 우산 낭비를 상당 부분 줄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