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자 양산, 게임업체도 책임”

입력 2013-06-19 17:50 수정 2013-06-19 21:15


온라인게임 중독 피해자, NHN 상대로 국내 첫 청산금·위자료 소송

“온라인 포커 게임을 하다 수억원의 돈을 잃었습니다. 후유증으로 심각한 편두통에 시달리고 있고 뇌혈관 종양 진단을 받았지만 경제적 어려움으로 수술도 못하고 있어요.”

온라인 포커 게임으로 재산을 탕진하고 심각한 게임 중독 증세를 보여 온 김모(44·경기도 수원시)씨는 18일 수원 원천동 수원지방법원 앞마당에서, 최근 대표적 게임업체인 ㈜NHN를 상대로 국내 법원에 청산금 및 위자료 청구 소송을 제기하기까지의 사연을 털어놓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잘 나가는 석유회사에 다녔던 그는 1999년 포커 게임을 처음 접했다. 동네 PC방 주인이 게임머니를 무료로 준다는 말에 포커 게임에 손을 댄 것. 하지만 무료 게임 머니는 ‘악마의 유혹’이었다.

1년여 뒤 김씨가 포커 게임에 중독될 즈음, 무료 게임머니는 유료로 바뀌었다. 해킹머니를 사고 환전상에게 게임머니를 불법으로 팔아도 게임업체의 단속은 그 때 뿐이었고, 다시 매출을 올리기 위해 풀어주기 일쑤였다. 결국 게임을 하다 직장을 잃었다. 스스로 그만 두려고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본전을 찾고 싶은 욕망에 게임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는 “포커 게임은 결코 이길 수 없는 게임 구조”라고 말했다.

김씨는 지난 해 12월 NHN 한게임을 상대로 자신이 포커 게임으로 잃은 아바타(약 700만원)를 환불해 달라며 수원지법에 청산금 청구 소송을 냈다. 지난 해 5월 콘텐츠분쟁조정위원회에 온라인 게임 계정 압류에 따라 삭제된 아이템의 환불 요청을 했으나 게임 업체가 조정안을 거부하면서 소송을 낸 것이다.

김씨는 또 지난 달 14년 동안 포커 게임에 몰두한 나머지 신경증과 폐결핵, 편두통 등 정신적 피해를 보상하라며 1800만원의 위자료 청구소송도 냈다. 이는 컴퓨터 게임중독 피해자가 국내에서 낸 첫 번째 청산금 및 위자료 관련 민사소송이어서 법원의 판결에 귀추가 주목된다.

김씨의 변호를 맡고 있는 법무법인 ‘밝음’ 민우기 변호사는 “게임업체 측에선 과몰입 및 불법 환전을 예방하는 등 귀책사유가 없다고 주장하겠지만 수많은 환전상을 이용해 매출을 늘리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김씨의 피해 사례가 입증되면 보상을 받을 수 있고 이와 유사한 소송사례도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앞으로 ‘포커류 게임물 유사도박행위 정지 가처분’ 신청도 낼 계획이다. 또 전국도박피해자모임 인터넷중독분야 대표를 맡아 또 다른 게임도박 중독피해자 예방 및 구조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가족과 떨어져 혼자 고시원에서 살고 있다는 김씨는 현재 수원의 한 교회에 다니며 게임 중독으로 상심된 마음을 추스리고 있다. 교회에 가면 마음이 편하고. 통성 기도로 하나님께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게 가장 기쁘다고 했다.

김 씨는 “결국 모든 것이 내 잘못인 것을 인정한다”며 “컴퓨터 게임업체들이 적법절차에 따라 게임을 운영한다고 주장하지만 결국 게임 중독 피해자를 계속 양산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편법도 피해자가 잇따른다면 불법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으면 한다. 게임업체들은 앞으로 매출에만 힘쓸 게 아니라, 도박 유사 게임으로 병들어가는 피해자들의 대책 마련에도 나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수원=글·사진 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