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와 몽돌의 ‘거제 노래’ 들리나요?

입력 2013-06-19 17:19


거제도를 상징하는 노래로 “섬은 섬을 돌아 연연 칠백리”로 시작하는 ‘거제의 노래’가 있다. 거제 출신 시조작가 김기호 선생이 쓴 시에 지휘자 금난새씨의 부친이자 가곡 ‘그네’를 작곡한 금수현씨가 곡을 붙인 거제시의 시가(市歌)이다. ‘칠백리’는 리아스식 해안으로 이루어진 거제도의 해안선 길이를 뜻한다.

그런데 2011년 경남 거제시가 지리정보시스템(GIS)으로 측정한 결과 거제도 해안선의 실제 길이는 700리(약 280㎞)가 아니라 1128리(443㎞)로 확인됐다. 부속섬을 포함한 면적은 제주도의 22%에 불과하지만 들쭉날쭉한 리아스식 해안의 특징으로 인해 해안선은 제주도(418㎞)보다 25㎞나 더 긴 것으로 밝혀진 것이다.

본 섬과 73개 유·무인도로 이루어진 거제도의 해안선 중 거제해금강과 학동흑진주몽돌해변 등 해안선을 따라 두루마리 그림처럼 펼쳐지는 절경은 지세포항에서 병대도전망대에 이르는 동남부 해안선에 밀집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운면의 지세포항은 항아리처럼 오목하게 생긴 항구로 해양레포츠의 적지로 꼽힌다. 동백섬으로 유명한 지심도가 외해의 거친 파도를 입구에서 막아주기 때문이다. 특히 여름철에는 요트를 비롯해 윈드서핑, 제트스키, 모터보트 등 수상레포츠를 즐기는 마니아들로 그림 같은 풍경을 연출한다. 지난 13일에는 지세포항에 워터파크와 마리나 시설을 갖춘 대명리조트거제가 문을 열어 남해안 최고의 휴양관광지로 거듭났다.

지세포항과 병대도전망대를 연결하는 해안도로는 구조라해수욕장을 지나자마자 망치삼거리에서 북병산을 넘어온 고갯길과 만난다. 망치고개는 쪽빛 바다에 보석처럼 흩뿌려진 외도, 내도, 윤돌섬 등이 풍경화처럼 한눈에 들어오는 명소로 고개 아래에는 펜션들이 이국적인 풍경을 그린다.

윤돌섬 바깥에 위치한 섬은 내도와 외도. 그 옛날 외도의 여인이 새벽에 섬이 떠내려가는 장면을 목격하고 소리를 지르자 섬이 제자리에 멈춰 내도가 됐다는 설화가 전해온다. 남해의 거친 풍랑으로부터 내도를 보호하는 외도는 인간과 자연이 함께 만들어 낸 예술품. 드라마 ‘겨울연가’의 마지막 장면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국내외 관광객들이 발이 끊이지 않는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로 선정된 해안도로는 학이 날아가는 모습의 학동에서 1.2㎞ 길이의 몽돌해변을 벗한다. 흑진주처럼 검은 피부의 몽돌이 해변을 수놓은 학동흑진주몽돌해변은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 중 하나. 오랜 세월 파도에 닳아 동글동글한 몽돌은 파도가 쓸려나갈 때마다 자그락 자그락 소리를 낸다. 파도와 몽돌이 만들어내는 선율은 세상 어떤 악기와 목소리로도 흉내 낼 수 없는 천상의 화음으로 ‘한국의 아름다운 소리 100선’에도 올랐다.

학동흑진주몽돌해변에서 서쪽으로 1㎞ 구간은 천연기념물 제233호인 학동동백림. 팔색조 도래지로도 유명한 동백림은 2000년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아름다운 마을숲으로 선정됐다. 해안선을 따라 달리는 도로의 길섶은 금계국이 만개해 마치 노란색 띠를 두른 듯 황홀하다.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는 해안도로는 함목삼거리에서 명승 제2호로 지정된 거제해금강으로 방향을 튼다. 아담한 풍차가 돌아가는 도장포마을의 푸른 초원은 ‘바람의 언덕’이라는 낭만적인 이름을 얻었다. 거센 바닷바람 때문에 나무가 자라지 않는 곳으로 영화 ‘종려나무의 숲’을 비롯해 ‘로망스’ ‘이브의 화원’ 등 수많은 드라마가 ‘바람의 언덕’ 초원을 배경으로 삼았다.

도장포마을에서 거제해금강 방향으로 달리면 깎아지른 벼랑 위에 위치한 신선대 전망대가 발길을 붙잡는다. 벼랑 아래의 널찍한 바위는 신선이 내려와서 풍류를 즐겼다는 신선대. 쪽빛 바다 너머로 소병대도와 대병대도, 그리고 매물도 등 한려수도를 수놓은 섬들이 일망무제로 펼쳐진다.

바다의 금강산으로 불리는 거제해금강의 본래 이름은 갈도(葛島). 춘란 풍란 등 620종의 식물이 자생하는 식물의 보고로 중국 진나라의 서불(徐市)이 진시황의 명으로 불로초를 구하러 왔다고 해서 약초섬으로도 불린다. 썰물 때 배를 타고 사자바위 촛대바위 신랑바위 신부바위 등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거제해금강의 십자동굴에 들어가면 천장에 뚫린 십자 모양의 구멍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이 온몸을 휘감는다. 사자바위 사이로 솟아오르는 해돋이의 모습도 환상적.

지난해 설치된 우제봉전망대는 거제해금강과 주변 섬들을 한눈에 조망하는 포인트로, 해금강호텔에서 우제봉전망대까지는 900m. 동백나무숲 사이로 난 조붓한 오솔길은 햇빛 한 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울창해 한낮에도 소름이 돋을 정도로 시원하다. 오르막에는 나무데크가 설치돼 편안하게 걸을 수 있다.

우제봉의 절벽 아래 암벽에는 서불이 동남동녀 3000명을 데리고 거제해금강에 다녀갔다는 ‘서불과차(徐市過此)’라는 글이 새겨져 있었으나 1959년 사라호 태풍 때 유실됐다고 한다. 서불은 남해 금산을 거쳐 거제도 갈도와 제주 서귀포를 거쳐 일본 후쿠오카현 야메시로 건너갔다고 한다.

도장포마을 입구에서 다대포구와 여차몽돌해변을 거쳐 홍포마을에 이르는 해안도로는 1981년에 망산의 허리를 잘라 만든 길로 거제도가 숨겨놓은 비경 중 비경. 다대포구는 이순신 장군의 함대 91척이 옥포대첩을 하루 앞두고 정박했던 곳이다. 여차∼홍포 해안도로는 거제도를 에두르는 해안선 중 가장 아름다운 구간으로 옛 모습을 보존하기 위해 3.2㎞ 구간은 포장을 하지 않았다.

거제도 최고의 절경은 대병대도 소병대도 등가도 대매물도 소매물도 어유도 국도 가익도 가왕도 등 20여개의 섬이 한눈에 들어오는 병대도전망대. 거제와 통영의 섬은 물론 맑은 날에는 멀리 남쪽 수평선에 걸린 대마도도 선명하게 보이는 곳으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태양 위치와 기상 변화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한려수도의 바다풍경이 인상적이다.

거제=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