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의구] 에어컨

입력 2013-06-19 17:37

현대식 에어컨은 미국의 기술자 윌리스 캐리어에 의해 1902년 발명됐다. 뉴욕 브루클린의 인쇄공장에서 일하던 그는 인쇄용지와 잉크의 질이 일정하게 유지되도록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기 위해 전기 에어컨을 개발했다. 그가 1915년 설립한 캐리어엔지니어링회사는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물을 이용해 실내공기를 조절하는 기술은 고대부터 있었다. 이집트에서는 창문에 갈대를 매달아 놓고 물을 방울방울 떨어뜨림으로써 습기를 머금은 시원한 바람이 들어오도록 했다. 고대 로마에서도 벽 속에 수도관을 설치하고 물을 흐르게 하는 냉방을 했다고 전해진다.

현대식 에어컨이 가정에 도입된 것은 1920년이 지나서였고 1950년대 들어 가정용 에어컨 매출이 급격히 늘었다. 에어컨이 보급되자 무더위 때문에 여름에 살기 어려웠던 미국 남부 선벨트(Sun Belt)로의 이주가 대대적으로 일어났다. 실리콘밸리 같은 선벨트의 첨단 산업단지를 가능케 한 조건 가운데 에어컨의 보급도 당당히 한몫을 한 셈이다.

하지만 에어컨은 에너지 과소비의 주범으로 지탄받는 처지가 됐다. 매 여름 ‘전력 보릿고개’ 때면 어김없이 규제 목록에 오른다. 정부는 올 여름에도 전력수급 안정을 위해 에너지 사용 제한 조치를 내놓았다. 전기 다소비 건물 6만여곳은 섭씨 26도, 공공건물 2만여곳은 28도 이상으로 냉방 온도를 유지해야 하고, 문을 열어놓은 채 에어컨을 켜고 영업하는 행위도 금지된다. 다음달 1일부터 8월 말까지는 위반 횟수에 따라 50만원에서 300만원까지 과태료가 부과된다.

에너지 제한 조치 개시일인 18일 당국이 서울 명동 상가에서 계도에 나서자 원전 관리를 정부가 잘못해 놓고 영업을 방해한다는 볼멘소리도 나왔다고 한다. 정부는 내년에는 대규모 신규 발전기가 준공돼 전력난이 해소될 것이라며 이번 여름만 잘 넘기자고 협조를 당부했다. 하지만 불요불급한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건 올해 여름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며 지구의 미래를 위해 옳은 일이다.

같은 날 정장 차림에 넥타이까지 매고 청와대를 방문한 페이스북 공동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가 너무 더워 보여 박근혜 대통령이 대화 도중 “너무 더우시죠?”라고 물었다. 청와대는 올 여름 들어 한 번도 에어컨을 틀지 않았다고 한다. 아무래도 이번 여름에는 시원한 바람이 통하는 대청마루에 등짝을 붙이거나 물이 찬 골짜기를 찾아 탁족할 요량이나 해봐야 할 모양이다.

김의구 논설위원 e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