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풍향계-고유환] 北 대미 대화제의, 또 국면전환용인가

입력 2013-06-19 17:37


“북핵 문제와 관련한 2개의 악순환 고리 끊으려면 제재와 대화 동시에 추진해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국에 전면 대결전을, 남한에 대해선 전시상황을 선포하고 위기를 조성했던 북한이 대화공세를 펴고 있다. 최룡해 총정치국장이 중국을 방문해서 ‘6자회담 등 다양한 형식의 대화와 협상’에 응할 수 있다고 밝히면서 대결국면은 대화국면으로 전환됐다. 중국 방문 당시 최룡해는 “조선은 정말로 경제를 발전시키고 민생을 개선하고 싶다. 평화적인 외부 환경을 조성하고 싶다”고 말했다.

북한은 지난 16일 미국에 조건 없는 고위급 대화를 제안했다. 북한이 제시한 의제는 군사적 긴장완화문제,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문제, ‘핵 없는 세상’ 건설문제를 포함한 양국 현안문제다. 미국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우선 미국은 대화에 임하는 북한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듯하다. 지금은 제재국면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장거리 로켓발사와 핵실험 이후 유엔 안보리는 결의에 따라 북한에 대한 제재와 압력을 가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이 중국의 권고에 따라 대화에 응하는 형식으로 남북, 북·미 대화를 제의했지만 한국과 미국은 진정성에 의문을 품고 있다. 북한이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 있는 조치를 취하지 않고 먼저 대화를 제안한 것은 제재와 압력을 풀기 위한 것이 아닌지 의심받기에 충분하다.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한·미 양국의 공통 인식은 북핵불용의 대원칙 아래 지난 20여년간의 도발→제재→협상→지원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 조치를 향한 상당히 철석같은 개념’을 보여야 협상장에 나가겠다는 전제조건을 달고 있다. 이에 대해 북한은 북·미 적대관계 해소를 위한 평화회담이 아닌, 북한의 비핵화만을 위한 대화와 협상에는 나서지 않을 것임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미국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으며, 나쁜 행동에 보상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견지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은 대화 재개를 위해서는 우라늄농축프로그램 중단, 핵·미사일 실험 유예, 국제원자력기구 감시단 입북 허용 등 2·29 합의 이상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남북 당국간 대화가 수석대표의 격문제로 갈등하다 회담자체가 열리지 않은 것처럼, 이번 북·미 고위급대화 제의도 미국이 대화의 전제조건을 제시하고 있어 성사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미 양국이 북한의 대화제의에 미온적으로 대응하는 데는 도발 이후 제재를 가하면 대화를 제의하여 국면을 전환하고 보상을 받아가는 북한의 잘못된 행태에 대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한 것이다.

한·미의 정세인식은 지금은 국면전환보다는 제재와 압력을 강화하면서 북한의 핵개발의지를 꺾어야 한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중국도 한·미의 입장에 동조하고 있다. 지난 6월 초에 열린 미·중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할 수 없고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용인하지 않겠다고 합의했다. 북한은 한·미·중의 북핵불용에 대한 의지를 확인하고, ‘김일성-김정일의 비핵화 유훈’을 다시 언급하면서 6자회담과 양자회담에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한·미·중이 북핵문제와 관련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데 합의함으로써 북한도 대남, 대미 대화제의로 국면전환을 모색하고 있다. 북한은 그들이 원하는 국면전환이 이뤄지지 않으면 또다시 장거리 로켓 발사와 4차 핵실험 등의 위기조성카드를 빼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북한은 미국 등과 핵협상을 지속하는 동안에는 핵실험을 하지 않다가 제재와 압력이 가해지면 이를 빌미로 핵실험을 강행하여 핵능력을 향상시키는 악순환을 지속해왔다.

이와 같이 북한은 제재와 압력에 맞서 핵과 미사일능력을 향상시키는 또 다른 악순환의 고리를 가지고 있다. 북핵문제와 관련한 2개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제재와 대화를 두 트랙으로 동시에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