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슬그머니 문 닫은 알코올중독 전문병원
입력 2013-06-19 17:39
지난 10일 휴업신고서를 제출한 한국음주문화연구센터(카프·KARF) 산하 알코올중독 전문병원의 정상화 가능성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보건의료단체연합 등이 어제 보건복지부 앞에서 카프의 회생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는 등 시민단체까지 나서서 노력하고 있지만 소용이 없다. 안타까운 일이다.
카프는 국내에서 하나밖에 없는 알코올 전문 공익기관이다. 1997년 모든 술에 건강증진기금을 부과하는 내용의 법률안이 발의되자 대한주류공업협회(현 한국주류산업협회) 소속 29개 업체들이 2000년 기금을 모아 재단을 설립했고, 2004년에는 경기도 고양시에 전문병원을 세웠다. 이후 카프병원은 알코올중독 치료·재활 서비스를 종합적으로 제공하는 공익시설로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주류협회가 약속했던 연 50억원의 출연금 지원을 중단하면서 재정난 끝에 문을 닫게 된 것이다.
보건의료단체연합에 따르면 우리나라 주류업계는 연 매출액이 8조원을 넘고 8000억원 이상의 순이익을 내고 있다. 마케팅 비용도 매년 5000억원이 넘는다. 그런데도 건강증진기금 부과 대신 약속한 사회적 책임 이행을 회피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주류협회 측은 알코올 전문병원이 많이 생겨 병원을 운영하는 대신 예방사업에 집중하겠다는 논리를 펴고 있지만 ‘화장실 갈 때 다르고 나올 때 다르다’는 모습으로 비칠 뿐이다.
더 큰 문제는 정부의 무관심과 무능력이다. 국내 알코올중독자는 155만명, 연간 사회경제적 비용은 23조원이 넘는다. 하지만 치료를 받는 사람은 8.6%로 미국의 43%에 비해 크게 낮다. 음주에 관대하면서도 알코올중독을 개인적 문제로 치부하는 문화 탓도 있지만 제대로 된 치료시설이 없고, 복지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의지가 부족하다는 이유가 크다.
복지부는 이번 휴업사태에 적극적으로 나서 카프병원이 정상적으로 운영되도록 해야 한다. 동시에 정부 주도 전문치료시설 설립에 적극 나서야 한다. 알코올상담센터 운영비를 포함해 음주 관련 예산으로 연간 46억원만을 쓰면서 민간 업체의 지원금만 바라보는 식의 책임 회피는 곤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