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피난처

입력 2013-06-19 17:11


시편 46편 1절

제가 살고 있는 집 근처에 영천재래시장이 있습니다. 어제 외출했다 돌아오면서 이 시장에 들렀습니다. 탐스러운 참외가 과일 상점마다 가득 채워져 있었습니다. 참외는 매우 달콤하고 향긋한, 맛있는 과일입니다. 먹음직스러운 참외 2개를 사들고 집에 와서 아내와 함께 먹다가 참외 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참외를 먹는 중에 씨도 같이 먹습니다. 참외는 위(胃)에서 나오는 강한 위액에 의해 완전히 녹아버립니다. 그러나 참외 씨는 위액에 녹지 않습니다. 참외 씨는 참외를 먹은 사람의 위에서 장을 거쳐 다른 배설물과 함께 세상으로 탈출합니다.

참외 씨는 보잘것없는 존재로, 평소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참외 씨는 참으로 대단한 존재입니다. 사람의 위에 들어가 강력한 위액에 노출된 상황 속에서도 위축되거나 소화당하지 않고, 변질되거나 죽지 않고 살아나기 때문입니다. 이런 참외 씨의 특성에서 우리는 삶의 위기를 극복하는 생존 원리를 배울 수 있습니다.

어떤 기독교인은 눈앞의 작은 이익을 좇다가 의인으로 성화되지 못하고, 삶의 의미를 상실합니다. 그래서 어려운 환경에 처하면 쉽게 삶에 대한 의지를 잃고 소속감과 효능감이 좌절돼 ‘극심한 정신적 고통’(psychache)으로 고생합니다. 이것이 슈나이드만이 지적한 자살의 원인입니다. 열심히 살고 있는 중에 뜻하지 않은 삶의 위기가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약한 파도처럼, 때로는 강한 파도처럼 삶의 위기가 몰려와 우리를 죽이려고 합니다. 조직의 한 부속품처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갑자기 조직으로부터 내몰림을 당하거나 가족으로부터 소외당할 때 ‘활활 타는 숯덩이 같은 고난의 중심부 속에서 나 혼자 고통을 겪는다’고 탄식하면서 우울증에 빠지고, 극심한 좌절감 속에 자기 생명을 포기하려고 합니다. 이런 생각에 몰입한 분들이 있다면 ‘환난 날에 나의 피난처는 무엇이며 나에게 도움을 주시는 분은 누구인가’에 대해 마음의 문을 열고 깊이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참외 씨가 십자가 위에서 고난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라고 유추한다면 논리적 비약일까요?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 위에서 고난당하신 후, 사망권세를 극복하고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극심한 정신적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이들을 도와주십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처럼 예수님은 나의 피난처입니다.

매사 부정적인 인식과 죽음에 대한 욕망을 가진 분들이 있다면 에베소서 2장 10절의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는 말씀을 마음속에 깊이 간직해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작품 중에서도 명품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죄인인 내가 예수와 함께 죽었고, 부활하신 예수와 함께 부활했기 때문입니다. 즉 나는 구원받은 의인이요, 날마다 거듭나고 성화되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예수는 명품인 나의 피난처요, 생명의 능력(히 7:16)입니다.

정신적 고통의 심장부에서 예수의 십자가를 푯대로 삼고, 명품의식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피난처인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고, 그 음성에 순종하면서 내 가정과 이웃들을 섬기는 행복한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천하보다 귀한 사람이란 자긍심을 갖고 살면서 정신적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사람들을 힘껏 도와주기를(히 13:16) 주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고수철 목사(두드림 자살예방국민운동본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