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한연희 (14) 샘물처럼 솟는 열 아이 10色 웃음에 “행복합니다”

입력 2013-06-19 17:10


나는 밤낮 아이들로 북적대는 우리집 분위기가 좋다. 우리 애들은 서로 뭐가 그렇게 좋은지 뭉쳐 다니면서 깔깔거린다.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다보니 집안에 심각한 일이 생겨도 무거운 분위기가 오래 가지 않는 편이다. 이런 우리를 편하게 여기는지 동네 이웃도 스스럼없이 우리집에 드나든다. 그래서 일요일이면 집안이 ‘사람투성이’가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대충 끓인 김치찌개도 아이들은 꿀맛이라며 좋아한다. 하긴 경쟁이 치열한데 무슨 요리인들 맛이 없겠는가. 지난밤에는 명곤이가 감자전을 부쳤다. 살짝 언 감자를 빨리 먹기 위한 즉흥적인 발상에서 나온 요리였다. 명곤이 부부는 감자를 강판에 갈아 프라이팬에 부쳐 가족들에게 내왔다. 감자전이 부족해 계란 프라이도 만들었는데 이것도 접시에 담자마자 금세 없어진다. 아이들 중 누군가 계란말이가 더 먹고 싶다고 했나보다. 명곤이는 다시 부엌으로 가 계란말이를 뚝딱 만들어 식탁에 올린다.

사람 외에 우리집에 넘치는 게 있다면 바로 유머다. 우리 자녀들은 함께 놀며 지루할 틈 없이 지낸다. 찬바람이 심하게 불어도 우리집 남자아이들은 축구하러 야밤에 놀이터로 우르르 몰려간다. 코끝이 빨개져도 펄펄 뛰어다니는 걸 보면 정말 신이 나나보다. 용민이가 축구공을 잡기 위해 후다닥 뛰다 나뭇가지에 긁혀 얼굴에 커다란 상처가 났다. 신나게 한판 뛴 녀석들은 용민이를 서로 위로하며 약 발라주느라 분주하다.

이뿐인가. 누군가 좋은 영화를 추천하면 즉시 안방에 모두 모여 영화를 본다. 때론 스릴 만점인 전쟁영화를 봤다가 때론 순발력 넘치는 영화를 보면서 서로 공감대를 형성한다.

아이들은 우리집을 ‘갈라집’이라고 부른다. 가위바위보를 ‘갈라’로 부르는 우리집 아이들은 모든 집안일 당번을 무조건 이것으로 정한다. 음식물쓰레기 버리기, 설거지하기, 식탁 치우기, 빨래 널기, 방청소 등의 집안일을 공정하게 처리하기 위해서란다. 하루에도 몇 번씩 아이들은 집이 떠나가라 고함과 괴성을 지르며 가위바위보를 한다. 희비가 엇갈리는 아이들의 표정 때문에 우리 가족은 또 한번 왁자하게 웃는다.

우리 아이들은 내가 안아줄 때 내는 소리가 각기 다르다. 하선이는 ‘으흐음’하면서 편안하게 안긴다. 덩치가 큰 성일이는 내가 등을 토닥거리며 안아주는 걸 좋아한다. 녀석의 볼이라도 쓰다듬어주려면 키가 너무 커서 위로 팔을 뻗어야 할 정도지만 잘 자란 아이의 모습에 뿌듯하다.

맑은 눈을 가진 첫째딸 하나는 안아주면 눈을 깜빡거리며 ‘헤헤’하고 웃는다. 둘째딸 내리는 기다렸다는 듯 내게 안긴다.

애정표현이 어색한 아이들도 있다. 둘째아들 희곤이는 내가 안아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다. 그저 인심 쓰는 눈빛으로 잠시 안겨 있다가 몸을 뺀다. 용민이는 다가가면 몸부터 오그라들며 피한다. ‘하지 마요’하면서 몸부림을 친다. 결국 나는 용민이를 안아보겠다고 애쓰다 머리에 꿀밤을 한대 때리고 끝난다. 운비는 내가 안으려는 순간 ‘왜 그래요’하며 반항을 심하게 한다.

“왜 그러긴 뭘 왜 그래. 예쁘니까 그렇지. 엄마가 사랑하는 아들도 못 안아보니?”

일부 아이들에겐 아직도 내가 편안한 엄마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모양이다. 가끔은 속상하다. 형들에게는 껌처럼 붙어서 희희낙락하면서 내가 안으면 돌처럼 굳어지니 말이다. 하지만 이들도 나를 꼭 안아줄 날이 올 거라 믿는다.

갓 잡아올린 생선이 팔딱거리는 것처럼 늘 생동감이 넘쳐흐르는 우리집. 사회인부터 초등학생까지 다양하게 구성된 아이들을 바라보면 웃음이 절로 난다. 행복하다.

정리=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