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중 목사의 시편] 창의적인 자극이 필요하다
입력 2013-06-19 17:33
최근 한 결혼정보업체가 이혼한 남녀들을 대상으로 ‘전 배우자와 결혼생활 중 자신이 가장 자주했던 잔소리’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그런데 잔소리 효과에 대해 남성의 경우에는 ‘분위기만 나빠졌다’는 반응이, 여성의 경우에는 상대방이 ‘들은 척 만 척 했다’는 답변이 제일 많았다. 즉 배우자의 잔소리에 대해 여성은 감정적으로 대응하고, 남성은 무관심하게 지나칠 뿐 실제로 긍정적인 효과는 없었다는 뜻이다.
잔소리에 대한 사전적 정의는 1. 쓸데없이 자질구레한 말을 늘어놓음. 2. 필요 이상으로 듣기 싫게 꾸짖거나 참견함(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이다. 이 두 가지 정의의 강조점은 ‘쓸데없이’와 ‘필요 이상으로’이다. 자신의 경험과 상식을 토대로 볼 때 이미 적정선을 넘었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즉 상대방이 제대로 듣지 않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계속해 상대방이 듣기 싫은 말을 하는 것이 잔소리다. 그래서 잔소리는 매우 비효율적인 커뮤니케이션 방식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잔소리를 듣는 사람도 그런 지적과 핀잔을 한두 번 듣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되는 자신의 언행과 태도를 바꾸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비록 잔소리의 내용은 듣기 싫어도, ‘잔소리 듣는 것’ 자체에 익숙해져 버렸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에서, 잔소리는 잔소리를 하는 사람과 잔소리를 듣는 사람 모두의 습관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습관의 결과는 양편의 무의식 속에 쌓이는 매우 부정적인 감정과 (사실상의) 관계 단절이다.
하지만 잔소리의 행위에는 한 가지 긍정적인 면이 있다. 원칙적으로 잔소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지속적인 노력이기 때문이다. 상대방에 대한 애정이 없었다면, 잔소리가 아닌 구박(驅迫·못 견디게 괴롭힘)을 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잔소리는 상대방의 더 나은 미래를 소망하는 일종의 기대행위다. 하지만 잔소리의 부작용을 고려한다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잔소리가 아닌 발전적인 대안을 연구해야 한다.
현재 멕시코는 14개 주에서 시행될 7월의 지방선거로 후끈 달아 있다. 그런데 최근 이 선거에 이색 후보들이 등장했는데, 다름 아닌 고양이, 닭, 개, 당나귀 등의 동물들이다. 그리고 현재 이 동물 후보들은 이미 수만명의 지지자들을 확보한 상태다. 물론 이 동물들은 피선거권이 없기에 합법적으로 당선될 수가 없다. 하지만 이런 동물들을 출마시킨 멕시코 국민들의 의도는 너무나도 분명하다. 정치인들에게 ‘짐승보다 나은 인간’이 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결국 이 선거에서 동물보다도 적은 표를 얻고 당선된 정치인에게는 ‘짐승보다 못한 사람’이라는 꼬리표가 따라 다니게 될 것이다. 거친 정치 구호보다 훨씬 더 창의적이고 효과적일 것 같지 않는가.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부모들에게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엡 6:4)고 권면한 것처럼 오늘부터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잔소리가 아닌 ‘창의적인 자극과 대안’을 연구해보자.
<꿈의교회>
김학중 목사의 Facebook: facebook.com/dreamhakj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