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밥된 재형저축… 은행·고객 “먹잘것 없다” 등돌려
입력 2013-06-18 18:36 수정 2013-06-18 22:28
“재형저축이요? 재형저축은 7년이나 유지해야 하는데. 장기간 저축해야 하는 부담이 클 텐데 괜찮으시겠어요?”
18일 A은행 창구직원은 근로자 재산형성저축(재형저축) 가입을 문의하자 머뭇거렸다. 재형저축은 높은 금리가 장점이지만 오랫동안 가입 상태를 유지해야 하고, 3년 동안만 고정금리여서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설명했다. 대신 1년 만기 적금을 권유했다. 상담창구 옆에 있는 광고전단에서도 재형저축은 찾기 어려웠다. 숱한 광고전단이 쌓여 있지만 일반 예·적금 상품과 카드 홍보뿐이었다.
재형저축이 출시되던 100일 전만 해도 분위기는 반대였다. 은행 입구에서부터 재형저축을 알리는 대형 플래카드가 걸렸었다. 상담직원도 적금 상품을 문의하면 재형저축을 먼저 내밀었다. “지금 받을 수 있는 최고 금리 상품이 바로 재형저축”이라는 게 당시 은행 직원들의 설명이었다.
18년 만에 화려하게 부활한 재형저축이 자취를 감추고 있다. 은행은 역마진 우려 때문에 재형저축을 꺼린다. 고객은 7년 이상 돈을 묶어둬야 하는 탓에 가입을 주저한다. 은행과 고객이 모두 외면하면서 지난 3월 6일 출시된 재형저축은 신규 가입이 거의 없다시피 한 ‘유령 상품’으로 전락하고 있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이달 들어 지난 14일까지 시중은행에서 신규 개설된 재형저축 계좌는 1만4439개에 불과하다. 출시 초기 하루에 28만개의 계좌가 생겼던 것과 비교하면 초라한 실적이다. 재형저축은 출시 첫 달인 3월 은행에서 139만1027개의 계좌가 신설됐다. 하지만 4월 25만3816개, 지난달 7만9029개로 신규 가입자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소비자가 등을 돌리는 가장 큰 이유는 까다로운 금리 조건이다. 연 4.5%의 고금리를 내세우지만 우대금리를 채워야만 이 금리를 받을 수 있다. 7년이라는 가입기간을 채우지 않으면 이마저도 받기 어렵다. 고객 만족도가 낮을 수밖에 없다.
재형저축이 주춤하는 또 다른 이유는 은행의 태도가 180도 달라진 데 있다. 출시 당시 은행들은 편법으로 사전예약을 받으면서까지 열을 올렸다. 직원들에게 할당량을 주고, 은행 외벽에 대형 플래카드를 내걸면서 홍보에도 적극적이었다. 재형저축 특성상 고객을 장기간 묶어둘 수 있어 추가 이익을 거둘 수 있다고 판단했었다.
은행들이 변한 이유는 금리다. 3월까지만 해도 재형저축의 연 4.5∼4.6% 금리는 정기 예·적금보다 1% 포인트가량 높은 수준이었다. 은행들은 이마저도 ‘역마진’이라며 엄살을 부렸지만 중도해지 계좌와 장기 고객 유치의 장점을 생각하면 이득이었다.
하지만 기준금리 하락으로 시중금리가 곤두박질치면서 상황이 나빠졌다. 정기 예·적금 금리가 연 3% 아래로 뚝 떨어졌다. 재형저축과 정기 예·적금의 금리 차이가 1.5∼2% 포인트 나기 시작했다. 은행 입장에서 재형저축은 팔면 팔수록 손해 보는 장사가 됐다. 이 때문에 슬그머니 재형저축 판촉을 중단하고, 수익에 도움이 되는 다른 적금 상품 판매에 집중하는 것이다.
다만 고객 입장에서는 아직도 재형저축은 매력적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 입장에서는 불편하고 도움이 안 되지만 거꾸로 고객 입장에서는 좋은 일”이라며 “장기간 돈을 묶어둘 수만 있으면 재형저축만큼 도움이 되는 상품이 없다”고 말했다.
진삼열 기자 samu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