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맨얼굴 드러낸 20대 그룹의 불공정 행위

입력 2013-06-18 17:47

자진신고감면제도 손질하고 임직원 처벌 강화해야

지난 10년간 불공정 행위를 자행한 20대 그룹의 맨얼굴이 드러났다. 국민일보가 2003년부터 2012년까지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체 의결서 9764건을 분석해 보도한 내용이다. 취재 결과 공정위는 20대 그룹의 불공정 행위 669건을 적발해 과징금 2조6665억원을 물렸다. 이는 공정위가 부과한 전체 과징금 3조4081억원의 78.2%에 해당한다. 우리 산업계를 쥐락펴락하는 20대 그룹이 불공정 행위를 밥 먹듯 했음을 보여주는 수치가 아닐 수 없다.

20대 그룹의 불공정 행위는 시장 지배적 지위를 악용한 담합이 230건으로 가장 많았고, ‘갑’의 입장에서 ‘을’인 하청업체에 고통을 준 하도급 거래 위반이 59건이었다. 불공정 행위를 가장 많이 한 SK를 비롯해 삼성 현대차 LG 등 4대 그룹의 불공정 행위는 252건이었다. 4대 그룹이 20대 그룹의 불공정 행위 10건 가운데 4건을 자행한 것이다. 대기업들은 담합이나 하청업체의 희생을 통해 막대한 이익을 챙기고, 적발되면 온갖 핑계를 대며 읍소하고, 공정위 제재가 확정되면 막강한 변호인단을 동원해 행정소송으로 맞섰다.

재계 반대를 무릅쓰고 ‘하도급 거래 공정화 법률(하도급법)’이 지난달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것은 대기업 횡포를 더 이상 묵과하지 않겠다는 여야 견해가 대체로 일치했기 때문이다. 하도급법은 최대 3배의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고, 손해배상 대상 행위에 기존의 기술 탈취 외에 부당한 대금인하·발주취소·반품행위를 추가했다. 중소기업협동조합에 납품단가 조정협의권도 부여했다. 하도급법과는 별개로 정부는 최근 부당한 거래로 적발되면 최고경영자를 고발하고 하도급 계약·대금지급 여부를 점검하는 종합대책도 내놨다. 대기업은 정부와 여론의 압박이 강화되면 상생을 이야기하고, 시간이 지나면 흐지부지하는 구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공정위가 대기업 담합을 적발하기 위해 사용하는 자진신고감면제도(리니언시)가 대기업에 면죄부를 주는 것도 큰 문제다. 공정위는 여러 기업이 담합했을 때 첫 번째와 두 번째로 신고한 기업에 각각 과징금의 100%와 50%를 감면해준다. 담합을 주도하고도 가장 먼저 신고하면 과징금을 한 푼도 내지 않는 것은 모순이다. 담합한 기업이 독과점 업체 2곳뿐이어서 먼저 신고한 기업이 과징금 100%를, 다른 기업이 50%를 면제받은 사례도 있다. 짬짜미를 통해 제품 가격을 올려서 시장 질서를 교란하고 폭리를 취하고 소비자에게 피해를 입혔는데도 징계 효과는 미미할 수밖에 없다.

공정위는 리니언시가 은밀하게 이뤄지는 담합을 처벌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허점투성이의 이런 관행을 유지하면 안 된다. 과징금 감경률을 대폭 줄이되 담합을 주도한 기업은 감경 대상에서 배제하고, 조사 기법을 선진화시켜야 한다. 또 불공정 행위에 가담한 기업 임직원들을 엄하게 처벌할 필요가 있다. 지금처럼 잘못한 임직원에 대한 공정위의 처벌도 약하고 기업이 이들을 감싸고돌면 불공정 행위는 근절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