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안동현] 멕시코 페소 위기 기억해야
입력 2013-06-18 17:38
지난주 글로벌 금융시장이 요동쳤다. 4월 말 1.65%에 불과하던 10년물 미국 국채 금리가 주 초반 2.2%를 넘어섰다. 여기에 아베노믹스의 실패 가능성이 부각되면서 일본 채권가격과 주식가격이 동반 하락했고 엔화는 다시 강세로 돌아섰다. 우리나라도 외국계 증권사들이 삼성전자 실적에 대해 부정적 전망을 쏟아내면서 결국 코스피의 1900 지지선이 깨지고 말았다. 주 후반에는 동남아 주식이 폭락했다. 일견 국지적 현상으로 보였던 일련의 자산 가격 하락들은 이머징 마켓 전반으로 확산되었다. 외국인들의 집중적인 매도가 그 원인이었다.
이렇게 외국인들이 이머징 마켓에서 자금을 빼내는 건 미 연준의 양적완화 축소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양적완화 출구 전략이 실행될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정확히 예측하는 것은 워런 버핏의 말대로 쉽지 않은 일이다. 역사상 이렇게 대규모의 통화팽창 정책이 실행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거기다 일반적인 금리 인하뿐 아니라 화폐 발행을 통한 채권 매입이 동반된 프로그램이다. 물론 2000년대 일본이 양적완화 정책을 시행한 적이 있지만 당시 정책은 엔저에 그 목표를 두고 있었고 규모면에서 지금 미국에서 시행되고 있는 2조3000억 달러 규모의 양적완화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지난주 발생했던 금융시장의 혼란은 목요일 FOMC 미팅에서 엉뚱한 일만 일어나지 않는다면 이달 말이나 늦어도 다음 달이면 어느 정도 수습될 것이다. 이미 미 연준은 현재 7.5%인 실업률이 6.5% 수준으로 떨어질 때 양적완화를 축소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월 10만개의 일자리를 계속해서 창출하더라도 2015년이나 되어야 이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다. 여기에 IMF는 내년 미국 성장률을 기존의 3%에서 2.7%로 하향조정했다. 따라서 아직 양적완화 축소를 고려하기에는 너무 이르다. 이번 사태는 2008년 보았듯이 시장이 중앙은행에 일종의 시위를 하는 것으로 보면 된다.
그러나 이번 변동성 확대는 양적완화 축소가 현실화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지, 특히 우리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가늠할 수 있는 기회였다. 천문학적 규모의 유동성을 회수하기 위해서는 중앙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막대한 규모의 채권을 매각해야 한다. 주로 5년에서 30년물까지의 미 국채 및 주택담보부채권이 매각대상으로 가격 급락을 피할 수 없다. 이럴 경우 중장기채 금리 상승으로 기업과 가계부문의 자본조달 비용이 높아져 투자 및 소비가 위축되고 부동산 가격 역시 조정을 받을 것이다. 은행의 경우 장단기 금리 스프레드가 높아져 은행들의 캐리 수익은 좋아질 것으로 예상되지만 단기적으로는 보유채권의 평가손 발생으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출구 전략 시행의 파장은 미국 국내에만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이 풀었던 많은 달러는 상대적으로 국가부도 위험이 높은 유럽이나 자본 유출입을 통제하고 있는 중국 쪽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매력적인 이머징 마켓 쪽으로 많이 유입되었다. 이들 자금이 우선 회수될 텐데 그럴 경우 이들 나라의 통화가치 하락은 불가피해 보인다. 더욱이 양적완화 축소 자체가 달러 상승을 견인할 요인이기 때문에 대미 환율은 더욱 급락할 것이다. 특히 경상수지가 적자거나 자본 유출입이 상대적으로 손쉬운 국가들이 그 희생양이 될 것이다. 브라질, 인도 등이 일차적으로 위기에 취약한 국가들이지만 동남아 국가들도 위험하고 이들 국가에 위기가 닥칠 경우 투자심리 악화로 우리에게도 불똥이 튀지 말라는 법은 없다.
연준이 1991년 저축부대조합 파산으로 인한 경기침체에 대응하기 위해 금리를 3%대로 낮춘 후 94년 유동성 회수를 시작했을 때 멕시코에 페소 위기가 터졌고 불똥은 아르헨티나와 폴란드까지 번졌다. 우리 정부도 이제 출구 전략 시행으로 인한 환율변동성 확대를 염두에 두고 대비책을 서서히 강구해 나가야 할 때다.
안동현 (서울대 교수·경제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