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선 목사의 시편] 도의적 책임

입력 2013-06-18 17:42


육군사관학교에서 선배 생도가 술에 취한 후배 여생도를 성폭행한 사건이 발생하여 물의를 일으켰습니다. 학교 개교 이래 처음으로 일어난 사건으로 인해 육사 교장은 자신 사퇴를 하고 평생 걸어온 군인의 길을 마감하는 전역신청까지 했습니다. 별을 세 개씩이나 단 장군이며 대장 진급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진 육사교장의 자신 사퇴는 도의적 책임 때문이었습니다.

교장 자신이 못된 짓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생도들을 그렇게 가르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교장으로서 학교에서 그런 일이 일어난 것에 대한 책임을 진 것입니다. 내가 지은 죄가 아니지만 자신의 지휘 아래 있는 사람의 잘못된 행위에 대하여 책임을 진 교장은 억울한 마음도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그런 자리에 있다 보면 도의적으로 책임질 일이 생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안타깝지만 스스로 책임을 지고 인생의 중요한 결단을 했으며 그렇게 도의적 책임을 짐으로써 문제는 빠르게 수습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도의적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중 하나가 이렇게 남의 잘못에 대해 도의적 책임을 지는 사람이 있는데 죄를 지은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죄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는 것입니다. 책임을 지지 않을 뿐 아니라 그 죄를 변병하고 또는 발뺌을 하기도 합니다. 그중에는 교회의 지도자에 해당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육사에서의 사건은 술에 취해 일어난 일이고 또 혈기가 왕성한 젊은이의 잘못된 일이지만 술 취하지도 않았고 이미 지도자의 자리에 있으면서 맨 정신으로 행하는 못된 짓은 어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거룩함을 드러내야 하고 모범적인 삶을 살아야 마땅한 집단에서 일어난 죄도 가슴 아픈 일인데 그런 일을 하고도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 것은 절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교회는 세상보다 더욱 희망이 없어 보입니다. 답답한 일입니다.

교회는 세상보다 더욱 철저하게 스스로를 돌아보고 반성할 줄 알아야 합니다. 책임져야 할 일을 했을 때는 용기 있게 책임지고 잘못을 했으면 솔직하게 죄를 인정하고 고백하며 사죄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한 교회는 더욱 추락할 것입니다. 누구라서 죄를 전혀 짓지 않고 살겠습니까만 죄를 뉘우칠 줄 모르는 것은 절망스런 일입니다. 극히 일부지만 육사에서 일어난 것과 유사한 못된 죄를 반복적으로 짓고도 여전히 활보하고 목회활동도 버젓이 재개하고, 또 그렇게 하는데 뭔가 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교회 안에 정의는 있는 것인지 답답하기만 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양심을 깨우는 것이 우선일 것 같습니다.

<산정현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