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한연희 (13) 도둑처럼 찾아온 뇌경색… 주님, 3년만에 치유 허락
입력 2013-06-18 17:25
2010년 9월 3일, 나는 이날을 또렷이 기억한다. 이날 나는 좋아하던 CCM 밴드인 ‘꿈이 있는 자유’ 15주년 콘서트에 가기 위해 종일 분주히 움직였다. 콘서트 시작 전에 맞춰 공연장에 가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전에 대학병원에서 촬영했던 MRI 검사결과도 홀로 가서 보기로 했다. 일정도 그렇지만 누구도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런데 의사가 결과를 보자마자 안색이 변했다. 갑상선기능저하에 콜레스테롤 수치는 297, 혈압은 150에 100이 나왔다고 했다. 동행한 보호자 없이 혼자 왔다고 하니 의사는 놀라면서 내 연령대의 정상인 뇌와 내 상태를 비교해 보라며 사진을 보여줬다.
두 사진을 비교하며 의사가 설명하는데 들을수록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내 뇌에 손상된 부분이 무려 일곱 군데나 있다고 했다. 최근 몇 년간 운전하다 길을 잃는다거나 방금 한 말을 잊는 등 이해하기 어려운 크고 작은 사건들이 있었는데 그 원인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어머니, 이때를 위해 제가 치매지원센터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게 된 것 같아요. 어머니는 500만 명중 1명만 누릴 수 있는 행운의 주인공이란 걸 잊지 마세요. 뇌졸중은 쓰러지기 전에 발견되는 확률이 아주 낮습니다. 의사 소견으로는 지금 발견 못했으면 올 연말쯤 영안실에 왔을 확률이 100%라네요. 반드시 약 잘 드셔야 해요. 식이·운동요법도 열심히 병행하셔야 하고요. 조금이라도 치료에 소홀하면 10년 내 치매로 고생하게 된다고 하니 꼭 안내한 대로 하셔야 해요.”
큰아들 명곤이가 날 안심시키기 위해 의사와 나눈 대화로 전문적인 조언을 해 줬지만 난 대책 없이 눈물만 흘렸다.
돌연 누군가를 만나기가 두려워졌다. 누구에게도 망가진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계속 치매가 오기 전 의식이 있을 때 모든 걸 정리하자는 생각만 들었다. 그러면서 기억이 더 나빠지기 전에 가족에게 고맙다는 말도 하고 사랑한다는 말도 미리 해둬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난 죽음보다 치매가 더 두려웠다. 앞일이 걱정됐지만 두려움에 빠져 있기보다는 주님을 신뢰하는 편을 택했다. 생명의 주관자인 하나님께서 내게 허락한 일은 무엇이든 최선일 것이고 주님이 함께 하신다면 이미 모든 게 충분하다는 생각에서였다.
‘이런 상태로 콘서트를 가야 하나’ 눈물이 멈추지 않아 얼굴이 엉망이었지만 나는 남편과 집을 나셨다. 그런데 그날 저녁 힘든 마음으로 간 그 콘서트가 주님께서 내게 베푼 선물이었을 줄이야. 마치 날 위한 노래만 나오는 것 같았다.
‘꿈이 있는 자유’의 한웅재 목사는 노래에 얽힌 사연을 소개했는데 ‘나 어디 거할지라도’란 곡은 어머니가 쓰러지셨을 때 지었다고 했다. 나는 이 곡을 들으며 남편과 손을 잡고 많이 울었다.
‘나 어디 거할지라도 주 날개 나를 지키네. 그 그늘 아래서 나 주님을 노래하네. 외롭고 험한 길에 내 믿음 연약해져도 기다려주실 수 있는 주님…내가 살아 숨 쉬는 동안 주님 나 사랑하리.’
한 목사는 마지막으로 ‘너 결코 용기 잃지 말아라’를 불렀다. 이 곡 역시 가사가 내 마음 속에 들어왔다.
‘너 결코 용기 잃지 말아라. 주가 너와 함께 하시리니…너는 이제 약하지 않도다. 네 안에 계신 주님이 세상보다 크시니. 너의 삶이 조그맣고 너의 삶이 평범하게 보여도 네 삶을 주님께 맡겨라.’
그 후 3년이 지난 지금, 주님은 나의 모든 인지능력이 대부분 회복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셨다. 찬양 가사처럼 날 지켜주신 주님께 모든 영광을 돌린다.
정리=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