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자율성 확보가 금융선진화 첫 걸음이다

입력 2013-06-17 19:31

대주주·CEO 전횡 막을 제도 실효성 있게 운용해야

외환위기 후 10여년이 지났지만 우리나라 금융산업은 여전히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등 제조업체들이 글로벌 기업들과 어깨를 겨루는 데 반해 금융분야는 세계 50위권의 메가뱅크(초대형 은행)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금융회사들이 대기업 부실대출에 발목 잡혀 줄줄이 무너지면서 우리나라는 국제통화기금(IMF) 권고를 받아들여 사외이사 제도를 도입하고, 이사회 역할을 강화하는 등 선진화된 기업지배구조를 마련했다. 하지만 제도가 있으나 마나였다.

금융위원회가 어제 발표한 ‘금융회사 지배구조 선진화방안’은 그동안 형식적이었던 제도를 실제 관행 변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보완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사회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경영진에 상당부분 의존하고 있는 금융회사 위험관리와 이해상충 행위 감독, 지배구조 정책 수립 등을 이사회 권한으로 명문화하고 최고경영자(CEO) 승계계획 수립, 주요 임원의 추천·검증 등 권한과 책임을 부여한 점이 눈에 띈다. 거수기로 전락한 사외이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외이사의 개인별 활동내역과 보수를 공시하고 이에 맞는 보상체계를 수립하도록 한 것도 바람직하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제도를 마련했어도 실효성 있게 운용되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이다. 이사회가 그동안 CEO나 경영진 견제 역할을 하지 못한 것은 대통령과 친분 있는 낙하산 실세들이 수장 자리를 꿰차면서 견제할 엄두도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권 바뀌는 데 따라 낙하산 인사들이 휘젓고 간 뒤 또 다른 정권이 들어서면 전임 CEO가 역점적으로 추진한 사업을 뒤엎는 일들이 반복되면서 금융산업은 제자리걸음을 해 왔다.

금융산업을 선진화하려면 관치부터 없애야 한다. 최근 정부 지분이 없는 민간금융회사까지 관료 출신 낙하산이 대거 투하되는 데 대해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은 “좋은 관치도 있을 수 있고, 나쁜 관치도 있을 수 있다”고 했는데 이는 관료들이 민간인보다 우월하다는 오만함으로 비쳐진다. 미국 뱅크오브아메리카(BOA)나 골드만삭스 회장 등은 실적에 따라 주주와 이사회에 의해 평가받지, 정권이 바뀌었다고 옷을 벗지는 않는다. 금융회사의 자율성을 보장하지 않으면 금융선진화는 요원할 뿐이다.

사외이사 자리가 대외 방패막이로 전락해 전직 고위 관료나 법조계 인사, 경영진과 친분 있는 인사들로 채워진 것도 이사회가 깐깐한 시어머니 노릇을 못한 원인이다. 전문성과 중립성을 갖춘 사외이사를 뽑을 수 있도록 투명하고 객관적인 선임절차를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

저축은행 사태에서 보듯 공공성을 지닌 금융회사가 부도덕한 대주주들의 사금고로 쓰이는 것을 막기 위한 견제장치도 필요하다.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금융회사 대주주 적격성 심사제도를 업권에 관계없이 도입하고, 소수주주 등의 사전 의결권 위임을 통한 기관투자가들의 주주권 역할도 강화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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