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그룹 불공정 경영] 현대모비스 “경쟁사 부품 쓰지말라” 압박… 적발땐 읍소작전

입력 2013-06-17 18:14 수정 2013-06-17 22:01


(상) 상생·정도경영은 ‘헛구호’

‘재벌’과 ‘글로벌 기업’은 같은 것 같지만 다른 이름이다. 대기업들은 그동안 전 세계를 누비며 우리 경제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하지만 경제민주화 측면에서는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새 정부 들어 두 부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경제민주화 논의가 한창이다. 공정한 시장질서 확립을 위한 규칙을 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를 지키고 따르는 주체는 기업이다. 국민들은 대기업들이 과거의 잘못을 거울삼아 ‘공정거래의 적’이 아닌 공정거래의 주도자로 거듭나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런 취지에서 국민일보는 3회에 걸쳐 시장경제를 ‘역주행’한 20대 그룹의 지난 10년간 행적을 조명하고 개선해야 할 점을 제시한다.

국민일보가 분석한 20대 그룹의 불공정 행위 669건은 비슷한 패턴을 보였다. 시장지배적 위치에 있는 대기업은 ‘갑(甲)’의 횡포로 이윤을 챙겼다. 그러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덜미가 잡히면 각종 제재를 최소화하기 위해 납작 엎드렸다. 하지만 제재가 확정되면 행정소송을 제기하며 무죄를 적극적으로 주장했다.

2008년 공정위에 적발된 현대모비스의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행위가 대표적이다. 현대차그룹 계열사인 현대모비스는 각 대리점에 “남품을 중단할 수 있다”고 압박하며 경쟁사 부품을 취급하지 못하도록 했다. 공정위 조사가 시작되자 현대모비스는 허위 자료를 제출하고, 영업직원을 동원해 대리점주를 회유했다. 증거들이 나오자 제재 수위 낮추기에 골몰했다.

현대모비스는 자진 시정조치를 내놓으면서 “경영 악화로 막대한 과징금을 부담할 능력이 없다”고 ‘읍소작전’을 폈다. 결국 2009년 6월 현대모비스에 내려진 최종 과징금은 공정위가 당초 산정한 기본 과징금 751억4300만원에서 80% 감면된 150억2800만원으로 결정됐다. 과징금이 부과되자 현대모비스는 돌변했다. 공정위 제재가 부당하다며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이 사건은 4년여가 지난 지금까지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막강한 시장지배력을 바탕으로 소규모 경쟁 사업자의 팔을 비트는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행위는 대기업만 가지는 ‘특권’이다. 지난 10년간 적발된 20대 그룹의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행위는 7건에 불과하지만 ‘갑의 횡포’에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을(乙)’의 관행을 감안하면 숨겨진 불법은 더 많을 수밖에 없다.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20대 그룹에 속하지 않는 프랜차이즈 중견기업의 적발 건수까지 고려하면 지속적으로 대기업이 시장지배적 지위를 남용했다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동일한 불공정 행위를 반복하는 것도 20대 그룹의 특징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5월 하도급 업체의 납품 위탁을 취소하거나 물품 수령을 늦추다 16억2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앞서 삼성전자는 2005년에도 같은 불공정 행위를 하다 적발됐다. 삼성전자는 당시 115억7500만원의 과징금과 시정명령 제재를 받았었다.

지난 10년간(2003∼2012년) 공정위에 적발된 20대 그룹의 하도급법 위반 행위는 모두 59건에 이른다. 연평균 6개 대기업 계열사가 하도급 업체를 괴롭히다 적발되는 셈이다. 삼성그룹과 현대자동차그룹이 각각 11건으로 하도급법을 가장 많이 어겼다. 롯데그룹과 두산그룹이 6건씩 적발됐다. SK그룹이 5건, 포스코그룹과 LG그룹이 각 4건의 제재를 받았다.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행위나 하도급법 위반 행위는 중소기업에 부담을 떠넘기고 이익은 대기업이 챙기는 전통적 불공정 행위다. 그러나 잘 드러나지 않는다. 대기업의 눈 밖에 나면 매출에 심각한 타격을 받기 때문에 중소기업은 온갖 부당한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참여정부와 이명박정부 10년 동안 ‘경제 살리기’가 공정한 시장질서 확립보다 우선순위였다”면서 “대기업의 대표적 불공정 행위인 두 유형에 대한 감시 활동이 기업이 긴장할 만큼 활발하지 못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어떻게 분석했나

국민일보는 지난 두 달 동안 공정거래위원회 홈페이지에 공개된 2003∼2012년 공정위 의결서 분석 작업을 벌였다. 1차적으로 과징금 이의신청 사건 등 불공정 행위 제재와 직접적 관련이 없는 의결서를 뺀 9764건을 추려냈다. 이 중 의결서 내 피심인 명단에 20대 그룹이 1곳이라도 포함된 사건은 669건이었다.

국민일보는 669건의 의결서를 그룹별, 불공정 행위 유형별 등으로 분류하고 자진신고감면제도(리니언시) 적용 여부를 가려냈다. 법인뿐 아니라 불공정 행위로 제재를 받은 자연인들의 처벌 이후 행적도 추적했다. 여기에 무소속 송호창 의원실을 통해 공정위로부터 지난 10년간 ‘과태료·과징금 체납 현황’ ‘기업 행정소송 제기 현황’ 등 자료를 추가로 입수했다. 국민일보는 이렇게 검증·공개된 수만 페이지에 이르는 자료를 통해 20대 그룹의 불공정 행위 행태를 심층 분석할 수 있었다.

<특별취재팀>

경제부=김찬희 차장(팀장), 이성규·선정수·백상진·진삼열 기자

사회부=김동우·나성원·문동성·박세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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