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장마다 ‘연줄 인사’… 부당지시 통하는 조직 만들어

입력 2013-06-17 17:54 수정 2013-06-17 22:29


국가정보원 대선·정치 개입 의혹을 수사한 경찰 수사라인이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의 부당한 은폐·축소 지시를 그대로 따른 것을 놓고 “곪을 대로 곪은 경찰조직의 구조적 문제”라는 성토가 경찰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일선 경찰관들은 상부의 잘못된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는 첫 번째 원인으로 ‘인사권 독점’을 지목한다. 지휘관이 갖고 있는 인사권이 막강하다 보니 인사보복 우려 때문에 위법한 지시임을 알면서도 거스르기 어렵다는 것이다.

경찰 조직은 경찰청장 등 수뇌부가 바뀔 때마다 입맛에 맞는 인사가 되풀이되면서 조직의 기강이 서서히 무너졌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소신과 규정에 따른 업무처리 능력보다는 경찰청장 등 수뇌부의 친소관계가 승진이나 보직을 좌우하면서 눈치보기가 일상화됐다는 것이다.

현재 경찰 내부에서는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출신인 이성한 경찰청장이 취임한 뒤로 동국대 출신 간부들이 중용되고 있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실제 경찰 주요 보직인 경찰청 경무인사기획관, 외사국장, 수사기획관, 서울청 수사부장 자리가 모두 동국대 출신으로 채워졌다.

역대 청장들도 인사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조현오 전 청장은 취임 후 첫 치안감 인사에서 같은 출신 지역인 부산·경남(PK) 인사를 절반이나 승진시켰고, 경무관 승진자도 PK 출신이 가장 많았다. 조 전 청장에게 ‘노무현 차명계좌’ 정보를 최초 제공했다는 의혹을 받았던 김성근 제주지방경찰청장은 경무관 승진 1년여 만에 치안감으로 승진해 보은 인사 논란도 있었다. 한 일선서 수사과장은 “김기용 전 청장 때도 (그의 고향인) 충청권 출신이 약진해 내부적으로 말이 많았다”고 말했다. 다른 경찰관은 “경찰 조직은 보직이 승진을 결정한다”며 “승진 기준이 있더라도 보직은 지휘관 재량에 맡겨지기 때문에 좋은 보직을 받기 위해 인사권자에게 절대복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부하 직원의 긍정적인 비판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는 경찰 조직의 폐쇄적인 분위기도 문제로 지적된다. 한 경찰관은 “규정에는 부당 지시를 거부하지 않을 경우 본인이 책임지게 돼 있지만 현실은 문제제기를 하면 내부 고발자라는 꼬리표가 붙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투명한 경찰 인사제도 구축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 일선서 경찰관은 “끼리끼리 인사를 하니 ‘줄 세우기’ 등 부작용이 나타나는 것”이라며 “감사권 일부를 외부 인사에게 넘겨준 것처럼 경찰청장의 인사권에 대한 제약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휘관의 부당한 지시를 견제할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는 “막강한 권한을 가진 상급자의 부당한 지시에 대응해 의견을 표명할 수 있는 경찰 협의체나 옴부즈만 등을 구성할 필요가 있다”며 “경찰인권위원회의 역할을 강화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

[인기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