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전쟁] “60년 전 참전용사 대신, 후손이 평화 연주합니다”
입력 2013-06-17 17:28 수정 2013-06-17 22:14
한국전쟁기념재단 김인규 이사장
만난사람= 김명호 부국장
-정전 60주년을 앞두고 한국전쟁기념재단에서 여러 사업을 진행 중이다. 정전 60주년의 가장 큰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정전 60주년 의미는 굉장히 크지만, 국민은 물론이고 대외적으로도 잘 알려지지 않았다. 전쟁의 의미와 평화의 메시지를 대내외에 알릴 필요가 있다. ‘60년 동안의 정전 체제’라는 것은 세계사에 전무후무한 일이다. 최근 북한은 대남 비방을 하면서 ‘(남한이) 정전협정을 파기한 것으로 보겠다’란 얘기까지 했다. 정전 상태를 무시하는, ‘있을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60주년을 맞아 한반도 긴장 완화를 위해 전환점으로 삼아야 할 필요가 있다. 특히 젊은 세대는 전쟁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 정전 체제는 더욱 모른다. 해외에 나가서도 ‘대한민국은 정전 상태’라고 하면 다들 깜짝 놀란다. 한반도는 전쟁이 끝난 게 아니라 중단된 상태임을 모르는 이들이 너무 많다. 우리 재단은 민간재단이지만 이런 문제에 초점을 맞춰 정전의 의미를 알리고 평화를 되새기는 사업을 하려 한다.”
-6·25전쟁이나 정전 체제 개념을 모르는 젊은 세대에 무엇을 전달하려 하나.
“전달이라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젊은 세대를 위한 사업으로는 엄홍길 휴먼재단과 함께하는 ‘DMZ 155마일 평화대장정’이 있다. 60주년이 되는 다음달 27일부터 8월 10일까지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부터 임진각까지 155마일을 걷는 행사다. 젊은이 155명이 직접 참여해 보름 동안 걸으며 휴전선의 상태도 살펴보고 한반도 평화에 대한 의미를 되새기려 한다. 외부 재단과 함께 ‘평화통일콘서트’를 열면서 오피니언 리더들의 강연을 곁들인 전국 순회 콘서트도 계획하고 있다. 이 행사에 참여하는 젊은 세대들에게는 물론이고, 전 국민을 대상으로 정전 60주년을 알릴 생각이다.”
-진보와 보수 이념에 따라 평화협정에 대한 의견이 갈리고 있다. 평화협정을 어떻게 보나.
“평화협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이유 중 하나는 북한이 평화협정을 들고 나오면서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우리는 평화협정을 ‘북한의 전략전술’ ‘주한미군 철수’라는 의미로 경직되게 받아들이는 측면이 있다. 또 하나는 우리도 ‘평화협정을 논의하자’고 대담해지려 하는데 정전협정 논의 대상이 북한과 미국인 상황이어서 ‘우리는 대체 뭐냐’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북한도 크게 봐서 남한 정부가 당사국이니 우리와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 또 남한은 주한미군 철수 문제를 너무 걱정하지 말고 ‘진정한 평화 협정만 보장된다면 할 수 있다’는 자신 있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보수는 평화협정이라는 단어에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측면이 있다. 이제 그럴 때는 지나지 않았나.”
-정전 60주년이 평화협정 문제를 다시 논의하는 계기가 되리라 보나.
“그렇다. 최근 미국과 중국 사이가 겉으로 보기에 상당 부분 신뢰가 회복된 듯하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만남을 봐도 그렇다. 양국은 과거에 서로 못 믿었기 때문에 한반도를 분단 상태로 유지했다. 이들의 신뢰가 구축되면 한반도 분단 체제를 굳이 고수할 필요가 없어질 수도 있다. 한반도 주변 외교 환경도 정전 상태를 바꿀 만한 분위기로 바뀌지 않았나 싶다.”
-기념재단이 추진 중인 정전 60주년 사업들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나.
“재단이 출범할 당시인 2010년 우리 정부는 6·25전쟁 발발 기념사업을 위주로 했다. 나라마다 참전 시점이 달라 발발 기준으로 하면 전쟁 의미를 함께 되새기기 어렵다. 발발 60주년보다 정전 60주년의 의미가 더 크다. 이제 곧 6·25 행사가 시작되고 7월 27일 정전 60주년 행사가 있는데, 국민들 스스로 ‘현재 이 정전 체제에는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정전 상태가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외국인들이 볼 때 한반도를 ‘불안한 체제’라고 여기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유엔참전국 교향악단 평화음악회’에 대한 기대가 높다. 구체적으로 어떤 행사인가.
“참전 21개국에서 한두 명씩 음악인을 선발했다. 참전국 출신 음악인이 한자리에 모여 국내 단원들과 함께 연주하기 때문에 의미가 깊다. 국내 단원들은 지금 모집 중이다. 서울시향이나 KBS 교향악단이 무대에 오를 수도 있었지만 평화 메시지를 함께 만들어 간다는 의미를 위해 공개 모집을 했다.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마에스트로 프란체스코 라 베키아(Francesco La Vecchia)와 한국의 대표 마에스트로 배종훈, 세계 최정상 소르파노 신영옥 등이 선발된 단원과 함께 다음달 26일 경의선 도라산역에 마련된 무대에 함께 선다. 정전 60주년 전야제인 셈이다. 행사에는 보훈처에서 초청한 참전용사 등 300여명이 참석해 자리를 빛낼 예정이다.”
-재단은 참전용사에 대한 보은(報恩)으로 후손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한국전쟁기념재단의 슬로건은 ‘We remember and share’다. 전쟁을 기억하고 공유하자는 의미다. 참전용사 대부분이 80·90대여서 그 후손인 손자·손녀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올해도 240여명에게 장학금을 전달할 예정이다. 지상군을 파병했던 16개국 중에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국가인 콜롬비아, 필리핀, 태국, 그리스, 터키, 에티오피아 6개 국가의 참전용사 후손 40명씩을 지원한다. 초·중·고교 학비까지 지원하고 있다. 대학에 들어가는 인원이 많지 않아 대학교 등록금 지원 사업은 아직 못하고 있다. 다만 서울에 와서 공부할 수 있도록 연간 15명 정도를 지원하고 있다. 올해는 정전 60주년인 만큼 그리스, 터키, 태국에 직접 방문해 장학금을 전달할 계획이다. 해군순양함대와 8월 말부터 3개국을 직접 방문해 전달한다.”
-지원금은 어떻게 마련하나.
“후손들 장학금 등은 100% 민간 기부금으로 지원한다. 기부금을 내는 사람들이 꽤 있다. 재단 후원사업의 목적에 공감해 ‘참전했던 사람들을 돕고 싶다’면서 자발적으로 기탁하는 사람들이 많다. 또 재단 직원들이 직접 찾아다니며 후원을 받기도 한다. 말하지 않아도 먼저 자발적으로 내는 사람들도 있다. 정전 60주년의 의의를 알리고, 보은행사를 해야 한다는 재단 뜻에 크게 공감하는 이들이 많아서 따로 모금운동을 하지 않았는데도 잘되고 있다. 다만 대학 등록금 지원 사업을 시작하게 되면 지원금이 많이 필요해 모금운동을 본격적으로 해야 할 것 같다.”
정리=김유나 기자 spring@kmib.co.kr
김인규 이사장은
김인규 한국전쟁기념재단 이사장은 6·25전쟁과 인연이 깊다. 한국방송공사(KBS) 사장으로 취임할 때 취임사에서 “한국전쟁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며 ‘한반도 평화 대기획’을 약속했다. 그 결과 10부작 다큐멘터리 ‘한국전쟁’과 특별기획 드라마 ‘전우’가 전파를 탔다. KBS 공채 1기 기자 출신인 그는 보도국장이던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금모으기 운동’을 범국민 캠페인으로 확산시키는 데 일조했다. 30년간 현역 기자로 활동했지만 방송 책임자가 된 직후에는 ‘드라마 전도사’가 됐다. 공영방송의 재원 확보와 한류 확산을 위해 드라마의 중요성을 인식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드라마에 대한 남다른 애정으로 사장 임기를 마친 지난해 11월 ‘드라마 스캔들’이란 책을 출간했다.
△서울(63) △경기고, 서울대 정치학과 △KBS 워싱턴특파원·총국장, 정치부장, 보도국장, 뉴미디어본부장, 사장 △한국디지털미디어산업협회장 △한국방송협회장 △ABU(아시아태평양방송연맹) 회장
한국전쟁기념재단은
6·25전쟁 정전 60주년 기념일 하루 전인 오는 7월 26일, 남한의 마지막 기차역인 경기도 파주 도라산역에 평화의 선율이 울려 퍼진다. 21개국 한국전 참전용사 후손과 국내 연주자들이 ‘무대 연합군’을 꾸려 ‘유엔참전국 교향악단 평화음악회’를 연다. 60년 전 총을 들고 이곳에 왔던 참전용사들을 대신해 후손들이 바이올린 비올라 같은 악기를 들고 평화의 메시지를 전한다.
한국전쟁기념재단(이사장 김인규 전 한국방송공사 사장)이 기획하고 국가보훈처와 경기도·부산시가 공동 주최하는 평화 음악회에는 참전국마다 1명 이상 음악인이 참여한다. 국내 연주자도 함께 무대에 올라 가곡 ‘그리운 금강산’ ‘비목’, 오페라 ‘시칠리아의 저녁기도’ 등 평화를 기원하는 곡을 연주한다. 국내 연주자는 오는 21일까지 홈페이지(www.braum.co.kr)를 통해 모집한다.
기념재단은 ‘우리는 기억하고 나눕니다(We remember and share)’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2010년 설립된 민간 공익재단이다. 6·25전쟁에 참전한 21개국 후손들에게 장학 지원사업을 벌이며, 평화와 나눔 정신으로 봉사하는 글로벌 리더 양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난해 말 취임한 김 이사장은 지난 14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잊혀져 가는 전쟁의 의미를 일깨우고, 참전용사 후손에게는 교육으로 보은하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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