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이성낙] ‘저질 자본주의’가 대학교육 망친다

입력 2013-06-17 19:49


“구조조정이란 미명 아래 진행되는 대학평가과정에서 대학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

몇 년 전 미국의 한 저명한 교수를 서울에서 만나 물어봤다. 동료교수가 몇이고, 전공의 수는 얼마나 되느냐고. 교수진과 전공의 숫자를 알면 그가 주임교수로 있는 임상과의 규모를 쉽게 어림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의 대학병원임상과는 전공의 교육프로그램을 몇 년 전 ‘박탈’당해 전공의가 없다고 한다. 대학병원운영자가 각 임상과의 운영 실적을 평가해 실적이 저조한 병원 내 임상과의 진료공간을 ‘접수’하여 병원수입성에서 기여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심장외과, 신경외과와 같은 임상진료과 확장에 필요한 공간으로 돌렸다고 한다. 그 결과 그의 임상진료공간이 좁아졌고, 이는 미국피부과학회가 수련병원 심사규정에 따라 ‘전문의교육기관자격’을 거두어들이는 결과로 이어졌다고 한다. 필자는 직감적으로 ‘천박한 자본주의’의 소행이라고 생각했다. 대학교육 본질의 한 부분인 교육은 아랑곳하지 않고 경쟁력이니 수익성이니 하며 아카데미즘이 ‘천박한 자본주의’의 제물이 되는 서글픈 단면이다. 그러면서 국내로 눈을 돌리니 가슴이 더 답답해졌다.

그동안 정부가 너무 많은 대학을 무분별하게 양산해 왔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 2012년도 자료에 의하면 무려 432개의 고등교육기관이 있으며 그중 일반대학교(4년제)가 189개, 전문대학(2년제)이 142개이며 기타 교육대학, 산업대학 및 대학원대학 등이 있다.

지난 10여년 동안 정부 주도로 국내 대학은 경쟁력 강화라는 기치 아래 강도 높게 구조조정을 했다. 오히려 때늦은 감이 있다. 그 첫걸음이 2년제 전문대학을 4년제 대학교와 통합을 유도하는 구조조정을 한 것이다. 졸업 즉시 산업분야에서 필요한 전문기술인을 양성하는 전문대학과 연구교육중심의 미래 인재를 양성하는 대학교와의 이질적일 수밖에 없는 물리적 통합을 정부가 권장·유도했다. 그런 정부가 대학교를 평가하면서 중요 항목으로 교수당 발표한 연구논문 숫자를 놓고 일률적 기준으로 평가하니 내부갈등의 소지가 발생하게 되었다. 지난날 전문대학을 평가하면서 당연히 4년제 대학교에서와는 달리, 연구논문수치보다는 전문기술인 교육에 초점을 맞춰 왔다는 사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교육목표가 다른 두 개체를 물리적으로 ‘합병’해 놓고는 대학평가에서는 교수당 논문 수를 따지니, 정부 주도 하에 통합한 대학교는 평가에 오히려 불이익을 받는 수모를 겪게 된 것이다. ‘교육철학 부재’의 본보기를 보는 아픔이다.

또한 근래 대학가에서 인문학을 전공하는 교수들의 한숨 소리가 들려온다. 대학아카데미즘의 핵심인 인문학 중에서도 ‘문사철(文史哲)’이 시름시름 죽어가고 있다는 소리를 오래전부터 들어 왔다. 이젠 숨을 거두게 될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다. 덴마크 철학자의 ‘죽음에 이르는 병’이란 책 이름처럼 단단히 중병을 앓고 있다고 한다. 며칠 전 마종기 시인이 대학에서 문학하는 후배 동료로부터 들은 이야기라며 전한다. 국내 대학에서 인문학의 운명이 ‘경쟁력 강화를 위한 구조조정’이란 미명 아래 진행되는 대학평가과정에서 크게 몸살을 앓고 있다고 한다. 그 한 가지 중요한 예가 대학평가에서 졸업학생의 취직률이 대학의 우수성과 경쟁력을 평가하는 잣대가 된다고 한다. 우습고 허탈하다. 인문학 교육을 잘 받은 인재가 몇 년을 ‘방황’하다가 어느 날 시를 쓰며 당당히 등단하기도 하고 소설을 쓰는 작가가 되기도 할 터인데, 대학평가를 하면서 졸업당해년도 취업률을 기준으로 삼는다고 한다. 음악 및 미술대학 같은 예체능계열 대학의 경우 다를 리 없다.

문득 서울 도심 한복판에 서 있는 모 대학의 ‘취업사관학교 ○○대학’이란 ‘흉물스러운 홍보판’을 볼 때면 눈을 돌리곤 하던 것이 떠올랐다. 외국의 교육전문가들이 오늘 국내 대학교의 어두운 속사정을 보며 ‘대학교가 저질 자본주의에 의해 망하는’ 본보기라고 질타의 손가락질을 할 것만 같아 걱정이 앞선다.

이성낙 (가천대 명예총장·현대미술관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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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관회 회장

이성낙(가천대 명예총장·현대미술관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