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범이는 중학교 1학년 때 특기적성으로 배웠던 비파를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다고 했다. 비파를 본 적도 없고 값도 잘 몰랐던 나는 악기도 사 주고 개인교습도 받게 해 주겠다고 했다. 아마 미리 알았더라면 이처럼 선뜻 허락하지 못했을 거다. 하지만 아이에게 좋다고 대답을 했으니 번복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간 나는 아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려주기 위해 한번쯤 벅찬 시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그렇기에 난 300만원을 들여 아이에게 연습용 비파를 사줬다. 그리고 그날부터 매일 명곡을 듣는다는 자세로 아이의 서툰 비파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우리 집의 사정을 아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영범이가 비파를 전공할거라 했을 때 혀를 내둘렀다. 우리가 부자도 아닌데 흔치 않는 고가의 악기를 가르쳐서 어쩌겠냐는 것이었다. 또 영범이가 나중에 비파로 밥벌이를 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도 적지 않았다.
그렇지만 나는 중도에 그만두더라도 영범이만 행복하다면 배워보게 할 작정이었다. 재능이 있었는지 아이는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입학은 기뻤지만 예고 등록금이 많이 비쌌기에 고민도 많았던 게 사실이다. 그러던 어느 날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영범이가 2학년이 되던 해 사립학교였던 예고가 국립으로 바꿔 등록금이 없어진 것이다. 등록금이 버거웠던 내게는 기적 같은 일이었다.
기적 같은 일은 또 있다. 서울예술대학이 개최한 동랑예술제에서 영범이가 대상을 받은 것이다. 대상 한 명에게만 입학금 면제 혜택을 준다기에 나간 대회였는데 정말로 그 대상자가 된 것이다. 아이는 대학 입시를 앞두고 더 좋은 대학에 가고 싶은 마음에 많은 갈등을 하더니 결국 서울예대에 원서를 냈다. 우리 형편을 고려해 입학금 면제가 되는 곳으로 대학을 결정한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영범이가 내게 오더니 달뜬 목소리로 말했다. “방금 학교에서 전화가 왔는데 제가 학과수석이래요. 학과 수석은 전액 장학금을 받을 거예요. 내일 학교 가서 물어봐야지."
이 소식을 우리 가족 때문에 늘 걱정하시는 시부모님께 가장 먼저 전해드렸다. 부모님 두 분께서는 기쁜 소식에 깜짝 놀라시면서 거의 동시에 물어보셨다.
“걔네 부모는 알고 있니? 학과수석 아무나 하는 게 아닌데. 자식이 수석을 해도 모르다니 참 안됐구나.”
생각지도 못한 질문이었다. 시부모님 말씀을 듣고 보니 이 순간 그 누구보다 기뻐할 사람은 바로 영범이 친부모일 것 같았다. 해산의 수고를 한 이들에게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대학 입학금 면제와 학과 수석 입학도 이렇게 안타까운데 나중에 영범이가 결혼할 때 이들의 심정은 어떨까. 영범·영환 형제가 자신들의 성장과정을 이들에게 알리는 걸 원할까. 설혹 알린다고 해도 자녀를 보러 올까. 그간의 경험으로 볼 때 이들이 형제를 보러 오는 건 어려워 보였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라는 생각이 밀려왔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한없이 생각이 이어졌다. 기쁨은 나눌수록 커진다는데 이를 나눌 수 없어 안타까웠다.
입학 이후로 지금까지 영범이는 단 한 번도 등록금을 내지 않았다. 대학 4학년까지 뛰어난 학업성적으로 우등생 자리를 놓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모의 보살핌을 받지 못해 밥 한 끼 제대로 못 먹던 9살 아이, 한글을 몰라 책도 못 읽고 남의 눈치나 살피던 아이가 바로 영범이었다. 단지 부모 역할만 해줬을 뿐인데 아이는 불과 14년 만에 지상파 방송국과 세종문화회관 등에서 활약하는 비파연주자로 성장했다. 최근 영범이는 입양 부모들에게 아름다운 비파연주와 함께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며 희망을 심어주고 있다. 아마도 ‘수지맞다’는 표현은 이럴 때 쓰는 게 아닐까 싶다.
정리=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역경의 열매] 한연희 (12) “꿈은 이루어진다” 영범이 14년만에 비파 연주자로
입력 2013-06-17 17:37 수정 2013-06-17 17: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