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국 치닫는 59년 역사 한국일보… 언론사상 초유 ‘편집국 폐쇄’ 사태
입력 2013-06-16 18:44
창간 59년을 맞은 한국일보가 사주의 비리 문제로 노사 갈등이 격화되면서 언론 사상 초유의 ‘편집국 폐쇄’ 사태를 맞았다. 신문 제작 및 정상 발행에도 빨간 불이 켜졌고, 사태 장기화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한국일보 사측은 15일에 이어 16일에도 서울 남대문로 2가 한진빌딩 신관 15층 편집국의 기자 출입을 봉쇄했다. 사측은 신문이 발행되지 않는 전날 토요일 저녁 전격적으로 편집국 봉쇄 조치를 단행했다. 노조 측에 따르면 장재구 회장과 박진열 사장을 필두로 편집국 일부 간부들이 용역으로 보이는 외부인사 10여명을 대동한 채 들어와 편집국 당직 기자들에게 회사 사규를 준수하는 내용 등의 ‘근로제공 확약서’를 제시한 뒤 서명하지 않자 내보냈다. 사측은 기자들에게 개인 이메일을 보내 확약서 작성을 재차 요구했다.
사측은 또 신문지면 제작을 위한 기사 집배신 시스템에 대해서도 기자들의 접근을 차단했다. 기자들이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입력하자 “○○○은 퇴사한 사람입니다. 로그인 할 수 없습니다”는 메시지가 떴고, 항의가 이어지자 사측은 “존재하지 않는 아이디”라고 문구를 바꿨다.
노동조합 비상대책위원회는 “사측이 15명의 용역까지 동원해 편집국을 폐쇄한 것은 대한민국 언론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라며 “언론 자유에 대한 심각한 훼손이자 기자들의 정당한 취재 권리를 방해한 불법 조치”라고 규탄했다. 기자 120여명은 16일 오전 9시 첫 규탄집회를 시작으로 오전 11시20분쯤 경찰 입회 하에 열쇠공을 불러 편집국 진입을 시도했다. 하지만 편집국 내부의 잠금장치 때문에 편집국으로 들어가는 데 실패했다.
사측은 박 사장 명의의 성명서를 내고 “편집국 폐쇄가 아니라 정상화를 위한 적법 조치”라고 주장했다. 사측은 “신문 제작을 방해하려는 자에 한해 선별적으로 출입을 제한하고 있는 것”이라며 사측 인력을 중심으로 신문을 제작했다. 사측은 이날 이계성 편집국장 직무대행을 수석논설위원으로, 하종오 논설위원을 편집국 국장직대로 인사발령을 냈다.
이에 노조는 “사측에 동조하는 부장과 차장 10여명이 짝퉁 한국일보를 만들고 있다”며 반발했다. 추후 노조는 사측의 편집국 불법 폐쇄와 기자 아이디 삭제 조치에 대해 ‘사원지위 확인 가처분 신청’을 제기하는 한편, 장 회장 비리 혐의와 관련해 추가 고발을 하는 등 법적 조치를 이어갈 방침이다.
한국일보 사태는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서울 중학동 사옥 부지로의 복귀가 무산된 것과 관련, 노조가 문제를 제기했고 이 과정에서 장 회장이 200억원 가치가 있는 중학동 사옥 재입주권을 포기했음이 드러난 것이다. 당시 장 회장은 개인 자산을 처분해 200억원을 돌려놓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겠다고 약속했으나 지키지 않았다.
결국 노조 측은 지난 4월 장 회장을 업무상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고 사측은 이에 이영성 편집국장을 보직 해임하는 등 인사 조치로 맞섰다. 이후 편집국 기자들이 보복 인사라고 반발하면서 ‘이중 편집국’ 체제로 운영돼왔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