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IJ 페이퍼컴퍼니 명단 공개] 공공기관 개인 명의로 탈세 의심 사는 일 자초

입력 2013-06-16 18:25 수정 2013-06-17 02:22

독립언론 뉴스타파가 15일 공개한 명단 중 ‘뜨거운 감자’는 예금보험공사(예보)와 예보 산하기관 정리금융공사다. 두 기관의 전직 직원들은 버진아일랜드에 두 곳의 페이퍼컴퍼니(실체가 없는 서류상 회사)를 세웠다.

1999년 9월 24일 설립된 ‘Sunart Finance Limited’ 회사의 등기이사에는 유근우 전 예보 직원과 김기돈 전 정리금융공사 사장, 진대권 전 정리금융공사 직원, 조정호 전 예보 직원, 채후영 전 예보 직원이 등재돼 있었다. 같은 해 12월 2일에 만들어진 ‘Trackvilla Holdings Limited’에도 유 전 직원, 김 전 사장, 조 전 직원, 채 전 직원과 함께 허용 전 예보 직원이 등기이사로 올라 있었다.

◇예보 해명, 뉴스타파 반박…무엇이 진실인가=예보는 조세피난처 연루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해명자료를 내고 “전적으로 부실금융기관 자산을 환수하기 위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예보는 “99년 6월 부실화된 삼양종금이 보유한 역외펀드 자산 5400만 달러를 심층 조사하던 중 이 자산이 버진아일랜드의 펀드매니저에게 투자 전권이 위임된 사실을 알았다”며 “삼양종금의 자산이 펀드매니저에 의해 은닉될 가능성이 높아 이를 회수하기 위해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했다”고 설명했다. 나라별 투자 관련 법령 등에 따라 신속하게 자산을 인수하기 위해서는 현지법인이 필요했다는 뜻이다.

페이퍼컴퍼니가 회사 명의가 아닌 개인 명의로 설립된 것에 대해서는 “예보는 법률상 정리금융기관 외에 자회사 설립이 불가해 자산회수 담당자 개인 명의로 설립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반면 뉴스타파는 수천만 달러가 오가는 일에 개인 명의를 고집한 점, 금융당국 및 국회에 보고하지 않은 점이 의심스럽다고 지적한다.

이근행 뉴스타파 PD는 “아무리 외환위기 시기라지만 순수하게 공적자금 회수가 목적이었다면 오히려 예보 이름으로 페이퍼컴퍼니를 만드는 게 정석”이라며 “수천만 달러의 금융자산이 개인 명의의 페이퍼컴퍼니, 그리고 이와 연결된 해외계좌로 오갔다면 그 과정에서 금융사고가 일어났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페이퍼컴퍼니 운영 내역을 관리·감독 기관인 금융위원회와 국회에 보고하지 않았고 관련 기록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며 “예보가 이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2200만 달러를 회수했다고 하지만 자산목록이나 거래 명세를 내놓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국세청 ‘명단 공개자’ 즉시 조사 착수=뉴스타파는 이번 발표에서 기존에 공개된 30명 외에 추가로 150명의 명단을 밝혔다. 여기에는 전수혜 전 여성경제인협회장의 두 아들도 포함됐다. 전 전 회장의 아들인 이기욱·기화씨는 버진아일랜드에 각각 다른 페이퍼컴퍼니를 세웠다.

2011년 국내 석유수입업체 중에서 가장 높은 수익을 거둔 페트로코리아의 이길우 대표도 이름을 올렸다. 이 대표는 버진아일랜드에 ‘Great ERA Group Limited’라는 회사를 세웠다. 국립대 교수도 명단에 포함됐다. 국립교통대학교의 윤만순 연구교수는 사모아에 ‘Santoma Limited’라는 회사를 세웠다.

국세청은 공개된 명단 전원에 대한 탈세 혐의 등 즉각 확인 작업에 돌입했다. 국세청 관계자는 16일 “단순 명단이기는 하지만 일단 신원확인 작업부터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진삼열 기자 samu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