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장애 학생 뺑소니범 잡은 주유원
입력 2013-06-16 18:18
추적추적 비가 내리던 지난 12일 오전 8시20분쯤 서울 방학동 H주유소에서 일하던 윤덕수(27)씨는 주유소로 들어오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 초등학생 정모(7)양을 치는 걸 목격했다. 책가방을 메고 우산을 쓴 채 주유소 앞을 달려가던 아이는 차에 부딪혀 튕겨나가듯 넘어졌다.
윤씨는 곧바로 달려가 아이의 손을 잡고 상태를 살폈다. 무릎 쪽에 상처가 났지만 이내 일어났다. 운전자는 그때까지 차에서 내리지 않았다. 윤씨는 운전자 정모(59)씨에게 정양을 병원에 데려가라고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정씨의 연락처를 받고 차종과 차량번호도 메모했다.
다시 주유소 일을 하는데 마음이 놓이지 않아 윤씨는 112에 전화를 걸었다. 경찰에게 사고 경위를 설명하고 정씨 연락처를 전해줬다. 얼마 후 전화를 걸어온 경찰은 그 전화번호가 ‘없는 번호’라고 했다. 윤씨는 메모해둔 차종과 차량번호를 경찰에 알렸고, 경찰은 이를 통해 정씨의 소재를 파악했다.
정씨는 정양을 병원에 데려가지 않고 방학동 B초등학교 앞에 내려놓고 가버린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 도봉경찰서는 정씨를 뺑소니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정씨는 “정양이 울면서 학교에 가야 한다고만 했다. 대화가 잘 이뤄지지 않고 심하게 다치지도 않은 것 같아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윤씨에게 ‘없는 번호’를 알려준 데 대해선 “경황이 없어서 그랬다”고 말했다.
정양은 지적능력이 떨어져 B초등학교 특수학급에 소속돼 있었다. 아버지도 지적장애인이다. 윤씨의 신고가 없었다면 고스란히 뺑소니 피해자가 될 뻔했다. 윤씨는 16일 “나도 7살 아들과 7개월 된 딸이 있어 ‘우리 애도 당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나선 것”이라고 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이사야 박은애기자 Isaia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