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美에 회담 제의] 북-미, 부시 때 접촉 뜸하다 오바마는 3차례 고위급 회담

입력 2013-06-16 18:06 수정 2013-06-17 02:20


북한과 미국의 양자 접촉은 1993년 제1차 북핵 위기 이후 빈번해지기 시작했다.

북한이 93년 3월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한 이후 양측은 같은 해 6월 2일 미국 뉴욕에서 3단계 고위급 회담의 첫 단추를 채웠다. 당시 로버트 갈루치 미 국무부 차관보와 강석주 북한 외교부(98년 외무성으로 변경) 부부장이 수석대표를 맡아 회담을 진행했다. 1단계 회담은 같은 해 7월 14일까지 모두 다섯 차례 진행돼 북한이 NPT 탈퇴 유보를 발표했다.

이틀 뒤에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2단계 고위급 회담에 들어가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사찰 협의를 재개하는 데 동의했다. 발표된 공동성명에는 북한 원자로의 경수로 전환에 대한 미국의 지원 내용도 포함됐다. 이와 별도로 양측은 같은 해 8월 판문점에서 ‘미군 유해에 관한 합의서’를 조인해 미군 유해 조사발굴 및 유해 발굴을 위한 쌍방 협조 문제 등에 합의했다.

94년 7월부터는 제네바에서 3단계 고위급 회담을 열어 같은 해 10월 양측 수석대표가 ‘제네바 합의’에 서명하는 성과를 올렸다. 양측은 북한의 기존 핵 동결과 모든 핵 설비에 대한 국제 사찰에 합의했다. 또 연락사무소를 교환 설치키로 하고 경수로 지원 및 중유 지원에도 의견일치를 이뤘다.

양측은 이후 연료봉 전문가 회의, 경수로 전문가 회의를 시작하는 등 접촉을 계속했다. 96년 4월 북·미 미사일 회담을 시작하고 유해 공동발굴 작업도 하는 등 화해 무드를 이어갔다. 97년 찰스 카트먼 국무부 차관보와 김계관 외교부 부부장 간 고위급 회담과 유해 송환 회담 등 연쇄 접촉이 이뤄지기도 했다. 이후에도 미사일 회담과 유해 송환 회담 등이 계속 이어져 99년 5월 미 대표단이 북한 금창리 지하 시설을 방문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2001년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 취임 이후 ‘악의 축’ 발언 등으로 경색국면에 접어들면서 양측 간 접촉이 뜸해졌다. 2002년 10월에는 제임스 켈리 국무부 차관보가 특사로 방북했지만 돌아와 북한의 비밀 고농축우라늄(HEU) 개발 의혹을 제기해 제2차 북핵위기가 점화됐다.

이후 버락 오바마 대통령 취임 첫해인 2009년 12월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북한을 방문해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 등을 만나며 대화 국면을 조성했다. 북한이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 및 북·미 관계 정상화를 우선 논의하자고 주장해 난항을 겪었지만 2011년 7월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이 4년 만에 미국을 방문한 것을 시작으로 지난해 2월까지 모두 세 차례의 고위급 회담을 개최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