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남북회담은 보이콧하고 북미회담 하자는 북

입력 2013-06-16 18:57

대미 외교 강화하고 중국 협력 보폭도 넓혀야

북한이 북·미 고위급 회담을 전격 제의한 것은 과거와 달리 호락호락하지 않는 우리 정부 대신 미국을 대화파트너로 끌어들이려는 이른바 통미봉남(通美封南) 전략 구사로 보인다. 남북회담을 북·미회담의 징검다리쯤으로 여기는 북한의 의도를 노골화한 것이다. 미국의 밤 시간대에 기습 회담을 제안한 것도 한·미를 겨냥한 심리전 성격이 강하다.

북한과의 대화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미국이 즉각적으로 회담에 응할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북한이 비핵화를 위한 선제적 움직임을 보인다면 상황은 변할 수 있다. 진정성 있는 대화 의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미국의 입장인 만큼 핵과 미사일 실험 유예 같은 가시적 조치가 있어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북한이 이번에 한반도 비핵화가 ‘군대와 인민의 의지이자 결심’이고 또한 ‘우리 수령님과 장군님의 유훈’이라는 등의 화려한 표현까지 써가며 비핵화 의지를 천명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미국과 중국의 핵보유국 불인정 요구를 수용한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동시에 ‘핵 보유는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한 전략적인 선택’이라며 모순적인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무엇보다 누가 인정해주든 말든 한반도 전역에 비핵화가 실현되고 외부의 핵위협이 완전히 종식될 때까지 핵보유국 지위가 추호의 흔들림도 없이 유지될 것이라고 강조한 점은 핵 포기 의사가 없다는 사실을 명백히 한 것이다. 미국과의 회담을 제안하는 자리에서 모호한 외교적 수사를 남발한 것은 정치적 프로파간다에 지나지 않는다고 볼 수밖에 없다.

남북당국회담이 무산된 지 5일 만에 나온 이번 미국과의 대화 제의는 우리 쪽을 겨냥한 측면도 있다. 가능성은 높지 않거나 전혀 없지만 만에 하나 북·미대화가 실제로 이뤄지거나 이뤄질 가능성이 높아질 경우 남북대화의 재개를 요구하는 나라 안팎의 압력이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곧 미국에서 열리는 한·미 및 한·미·일 6자회담 수석대표 회담이 주목된다.

김정은의 특사인 최룡해가 중국의 건의를 받아들여 관련국과 대화할 것이라고 밝힌 뒤 우리 측에 회담을 제의하고 미국과도 회담을 제의한 점도 눈여겨봤으면 한다. 북한이 중국에 대한 약속을 하나하나 지켜가며 지난해 미사일 발사 이래 틀어진 중국과의 관계를 복원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27일 예정된 한·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미회담을 전격 제안한 것은 중국으로 하여금 북·미회담이 성사될 수 있도록 미국 측에 힘을 좀 써달라고 요구하는 메시지로 해석할 수 있다는 말이다.

북한은 다루기가 쉽지 않은 존재이지만 우리로서는 대화를 피해갈 수 없는 상대이기도 하다. 당장은 미국과의 관계를 더욱 강화하고 중국과의 협력의 폭도 한층 넓히는 길이 선택할 수 있는 해법이 될 것이다. 결코 협상을 두려워하지 않지만 두려워서 협상에 응하지도 않겠다던 케네디 미국 대통령의 명언이 기억됐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