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의 여행] 로이 E. 애플맨 ‘장진호 동쪽’

입력 2013-06-16 19:07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미국 제10군 소속 중령이자 전사연구사인 로이 E. 애플맨(1904∼1992)은 1954년 예편한 이후 한국전쟁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5권의 저서를 남겼다. 최근 출간된 ‘장진호 동쪽(East of Chosin)’(도서출판 다트앤·사진)은 그 중 한 권이다.

1950년 11월 말, 미 제7사단 31연대전투단 소속 3000여명의 병력은 북한 개마고원에 위치한 장진호 동쪽에서 중공군 포위망을 뚫고 탈출하는 과정에서 영하 40도의 혹한을 견디지 못한 채 단지 385명만 온전하게 돌아올 수 있었다. 이 부대에 지급된 지도는 1916년 등고선 지형 데이터를 사용해 만든 일본어 지도뿐이었다. ‘장진(長津)’은 일본어로 ‘초신’이라고 발음되기에 영어로 ‘chosin’이라고 불렸다.

애플맨이 기억하기 싫은 패전을 들춰 대체 장진호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조사하려고 했을 때, 미 연방국립문서보관소에서조차 작전일지를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생존자들과 주변 참전군인들을 찾아 나섰다. 당시 32연대 1대대 작전장교였던 헤슬리 커슬리 대령을 만나면서부터 조사활동은 활기를 띠었고 면담 작업은 7년이나 걸렸다.

“나는 헨센 소위의 시신을 찾으러 같이 갈 지원자가 있는지 물었다. 아무도 가려하지 않았다. 나는 혼자 출발했다. (중략) 많은 중공군이 숲 속에 있는 것이 보였다. 내가 얼마나 광적인 상태에 있었는지 헛것이 보인 것이다. 그때는 내 신경이 광포해져 있을 때였다.”(149∼150쪽) 헨센 소위가 이끌던 제2지휘전차 승무원이었던 하월 병장의 증언이다.

적군의 총알을 복부에 맞고 쓰러진 헨센 소위의 시신은 적진 한 가운데에 총을 무릎에 올려놓은 채 앉은 자세로 나무에 기대어 있었다. 중공군이 놓은 함정이었다. 헨센 소위의 시신은 회수할 수 없었다. 이 책은 헨센 소위처럼 돌아오지 않은 수천 명의 미군 병사들에게 바치는 진혼곡이자 생존자들과의 면담을 바탕으로 한 생생한 한국전쟁 다큐멘터리이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