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적 공간서 길어올린 마음의 소리… 노충현 ‘살풍경’展
입력 2013-06-16 17:34 수정 2013-06-16 19:45
세상은 보는 시각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긍정적인 시선으로 보면 따뜻하고 살만한 곳이고, 부정적인 눈길로 보면 왠지 불안하고 살벌한 곳이 아닐까.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 주변의 풍경을 그림 소재로 삼는 노충현(43) 작가에게 세상은 ‘살풍경(殺風景)’한 곳이다. ‘살풍경’은 보잘것없이 메마르고 스산한 풍경 또는 살기를 띤 광경을 뜻한다.
작가가 그림에 그려내는 ‘살풍경’은 몹시 쓸쓸하고 고요한 정경이다. 그렇다고 절망만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희미하게 새어나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7월 14일까지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여는 개인전에 최근작 25점을 내놓았다. 1층에는 눈 쌓인 겨울과 밤 풍경 그림이, 2층에는 장마철의 여름 풍경 그림이 걸렸다.
그림의 배경은 서울 망원동 작가의 작업실 근처 한강시민공원이다. 1, 2층 출품작의 배경은 동일하지만 겨울과 여름, 눈과 물이라는 소재가 다르다. 작가에게 한강시민공원은 구조적이고 엄격한 도심과는 달리 한적하며 개방되고 접근이 용이한 곳이다. 틈만 나면 이곳을 거니는 작가는 순간순간 마주치는 공간에 대한 인상과 생각들을 그림으로 담아냈다.
홍익대 회화과를 나온 작가의 ‘살풍경’은 2005년 전시 이후 두 번째다. 당시에는 서울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상실감에 대한 정서를 풍경화로 보여줬다. 이후 아무 동물도 없는 우리를 통해 정체성이 모호한 세태를 표현한 ‘자리’, 군사독재 시절의 역사적인 시공간을 다룬 ‘실밀실’ 등 사회성 짙은 전시를 열었다. 이번 전시도 그런 주제와 맞닿아 있다.
작가는 직접 촬영한 사진을 바탕으로 풍경을 재현한다. 하지만 사진 이미지는 풍경에 대한 기억과 느낌을 끌어내는 도구일 뿐이다. 그의 풍경화는 실제로 존재하는 공간이기도 하고 상상 속의 공간이기도 하다. 현실과 가상을 넘나드는 화풍은 조선시대 화가 안견의 ‘몽유도원도’처럼 다분히 몽환적이다. 깊이와 울림이 있는 한 폭의 수묵화 같다.
주요 출품작 중 하나인 ‘산책’의 경우 한 인물이 눈 덮인 풍경을 걸어가는 모습이 담겼다. 나아가는 방향을 알 수 없는 이 인물은 어딘지 모르게 낯선 느낌으로 다가온다. 계절 변화에 따른 자연 풍광과 도시화에 따른 인공 풍경의 대비를 통해 제도적 관습 같은 것을 비판한 그림이다. 작가는 일상적인 풍경에 깃든 상반된 두 가지 이미지를 붓질한다는 점에서 주목 받고 있다.
전시장별로 조명을 달리 했다. 폭설 그림의 1층은 차갑고, 장마 그림의 2층은 후덥지근하다. 지난 주말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현실 속 풍경을 그대로 그리기보다는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색채나 느낌을 바꿔서 그린다. 그러다 보면 풍경을 바라보는 내 심상이 그림에 삽입된다”고 말했다. 풍경에 대한 접근도, 그림에 대한 감상도 각자의 시각에 따라 달라진다는 얘기다(02-735-8449).
국민일보 쿠키뉴스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