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웅 목사의 시편] 시계와 창문

입력 2013-06-16 17:29


얼마 전 베트남에서 캄보디아를 가로질러 태국으로 넘어가는 여행을 하는데 캄보디아 국경에서 생뚱맞은 느낌을 주는 큰 건물을 만났다. 아직 개발되지 않은 주변 분위기는 호젓하다 못해 스산한 느낌마저 주었는데 덩그러니 서 있는 거대한 건물이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동행한 선교사님께 물었다. “저게 뭐예요?” 선교사님이 살짝 웃으며 하시는 말씀, “카지노예요.”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카지노 호텔처럼 이곳도 카지노 이용객들에게는 숙박과 차량이 거의 공짜 수준이란다. 배낭족들에게는 카지노 버스를 이용하면 편하게 이동이 가능하다는 정보가 공공연하게 공유되고 있었다. 시커멓게 그을린 얼굴로 채소와 과일을 팔면서 한푼이라도 더 벌어 살아보겠다는 주변 행상들의 모습은 도박장의 호화스러움과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카지노에 없는 것 두 가지 아시죠?” 선교사님이 대뜸 던진 말이다. “뭔데요?” “시계와 창문이에요.” 그러고 보니 어디선가 들었던 말이다. 카지노에 들어온 사람이 어떻게 하든지 시계를 보게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아차, 시간이 이렇게 많이 흘렀구나!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이런 생각을 하게 해서는 안 된다. 또 창문을 통해 바깥세상을 보게 해서도 안 된다. 시원한 공기와 자유로운 세상이 밖에 있다는 것을 절대로 눈치채지 못하게 해야 하고, 이곳이 전부라는 착각을 하게 해야 한다. 어떻게 하든 이곳에 몰두시키고 매몰시켜야 한다. 그래서 카지노에서는 먹을 것, 마실 것을 무한정 공짜로 공급한다는 것이다. 캄보디아 황량한 땅을 걸으며 나는 이 세상이 거대한 카지노라는 생각이 밀려왔다. 인간의 삶을 보라. 우리는 몰두하며 산다. 내 야망과 쾌락 그리고 일상에! 그러다가 은연중에 매몰된다. 마귀는 혈안이 되어 속인다. 영원으로 열린 창문을 못 보게 한다. 그리고 내 인생을 송두리째 도둑질하려 한다.

실제로 가까운 후배 중에 카지노에서 젊은 세월을 도둑맞은 후배가 있다. 정신 차리고 시계와 창문을 보고 뛰쳐나왔지만 너무나도 쓰린 경험이었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마귀의 야비한 속임수에 잘도 속아 넘어간다. 황량한 땅으로 나오기 전 어쩌면 나 역시 사명의 옷으로 위장한 야망에 매몰되어 시계와 창문을 보지 못하고 달렸는지도 모른다.

‘천로역정’에 보면 주인공 순례자가 ‘미혹’이라는 땅에 들어간다. 그 땅에 발을 디디는 순간 어찌나 졸리는지 쏟아지는 졸음을 참을 수가 없다. 동행한 ‘소망’이라는 인물이 제안한다. “난 정말이지 자꾸 잠이 쏟아져 견딜 수가 없어요. 여기서 잠깐 누워 자고 갑시다.” 그때 순례자가 정색을 하고 말한다. “절대로 안 될 말이오. 여기서 잠들면 우리는 다시 깨어나지 못해요” 그렇다. 순례자의 말이 가슴을 찌른다. 영혼의 시계를 들여다보자. 영원으로 열린 창문을 쳐다보다. 우리는 아직 고향에 돌아오지 않았다. 깨어나자. 잠이 들면 죽는다는 각오로 뺨을 때려가며 졸음을 깨우자. 캄보디아 광야에서 나는 영혼의 졸음을 깨웠다.

<서울 내수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