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만에 돌아온 밴드 크라잉넛 “막∼ 달리자 18년… 이젠 옆도 보면서 가려고요”

입력 2013-06-16 17:42


밴드 크라잉넛은 2010년 데뷔 15주년을 맞아 책을 한 권 펴냈다. 제목은 ‘어떻게 살 것인가’. 책에는 크라잉넛 멤버들의 인생관과 음악 철학을 엿볼 수 있는 문장이 곳곳에 포진해 있다.

“우리더러 조선 펑크를 안착시킨 역사적인 밴드라는 둥 한국을 대표하는 인디 밴드라는 둥 하는데요, 그런 말 부담스러워요. 우린 그냥 밴드예요. 펑크 밴드” “‘크라잉넛은 이거만 해야 해’ 정해놓고 그거만 하려고 했다면 이렇게 오래 못했을 거예요. 하지만 그렇지 않았거든요. 새롭고 재미난 것을 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록 음악을 하는 한 늙지 않을 거 같아요. 오십이 되고 육십이 돼도 계속 무대에 오를 거고요. 전 비틀스보다 롤링 스톤스처럼 오래 가는 게 좋아요”….

최근 정규 7집 ‘플레이밍 넛츠(Flaming Nuts)’를 발표한 크라잉넛을 지난 13일 서울 광화문 한 카페에서 만났다. 밴드 멤버 박윤식(37·보컬) 이상면(37·기타) 이상혁(37·드럼) 한경록(36·베이스) 김인수(39·키보드)는 인터뷰 내내 책 내용처럼 가식 없는 진솔한 모습을 보여줬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직업은 놀면서 돈 버는 일인 거 같아요. 저희가 바로 그런 케이스죠.”(이상면)

“음악이란 게 일과 놀이의 경계선에 있잖아요? 친구들이랑 같이 음악 만들고 공연하면서 노는 게 여전히 제일 재밌어요. 지금처럼 평생 노는 게 저희의 꿈이에요.”(한경록)

이들이 발표한 7집 ‘플레이밍 넛츠’는 2009년 6집 ‘불편한 파티’ 이후 4년 만에 내놓은 정규 음반이다. 크라잉넛은 “그동안 달리는 데만 집중했기에 잠깐 쉬고 싶었다”며 “지난 4년이 재충전의 시간이 되면서 식상하지 않은 곡들을 많이 만들게 됐다. 기분이 좋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로 음반엔 기존 크라잉넛 앨범에선 찾아볼 수 없던 각양각색 음악들이 담겨 있다. 힙합 비트에 내레이션 같은 랩이 가미된 타이틀곡 ‘기브 미 더 머니(Give me the money)’를 비롯해 몽환적인 느낌의 ‘미지의 세계’, 강렬한 메탈 사운드가 인상적인 ‘땅콩’ 등 수록곡 10곡은 저마다 색다른 느낌을 준다. 하지만 장르만 제각각일 뿐 모든 곡에선 크라잉넛의 개성이 강하게 묻어난다.

“멤버 다섯 명의 색깔이 다 달라요. 하지만 18년을 함께 한 내공이 있으니 각자 곡을 써와도 함께 작업을 시작하면 각 음악이 하나의 색깔로 통일이 되는 거 같아요.”(이상면)

“저희가 가창력이나 연주력이 엄청 뛰어난 팀은 아니잖아요? 그게 오히려 장점인 거 같아요. 멤버들 실력이 그만그만하다는 얘기죠(웃음). 하지만 다섯 명이 하나가 되면 강력한 펀치가 되지요.”(박윤식)

멤버들의 이같은 발언은 수록곡 ‘레고’ 노랫말과 일맥상통한다. ‘나는 방바닥에 굴러다니는 작고 딱딱한 레고 조각이라네/ 잘못하다 나를 밟아버리면 사람들은 내게 짜증을 내/…/언젠가는 내 친구들을 만날거야/ 우리들이 서로 잘 끼워 맞춘다면 원하는 건 모든 것이 될 수 있어.’

크라잉넛이 무대에 선 건 18년 전인 1995년부터다. 하지만 팀이 결성된 것은 20년 전인 93년이다. 서울 신용산초등학교 동창생인 네 명(박윤식 이상면 이상혁 한경록)은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마음이 잘 맞는 친구였다. 이들은 재미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고교생 밴드를 만들었다.

이 아마추어 밴드는 96년 ‘말 달리자’라는 희대의 히트송을 만들어내며 ‘인생 역전’을 경험한다. 99년 김인수가 합류한 뒤에도 ‘서커스 매직 유랑단’ ‘밤이 깊었네’ 등을 잇달아 히트시켰다. 90년대 중후반 생겨난 수많은 인디 밴드 중 크라잉넛은 첫 성공 사례였다.

“어릴 땐 우리 음악이 최고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요즘 보면 저희보다 잘하는 친구도 많더라고요. 저희도 더 열심히 해야겠죠. 구르는 돌엔 이끼가 끼지 않는다고 하잖아요? 나이가 들어서도 녹슬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는 밴드가 되고 싶어요.”(박윤식)

“지금까진 앞만 보고 달려왔지만 이젠 옆도 보면서 가려고요. 다른 장르의 음악도 이해해보고 싶어요.”(이상혁)

국민일보 쿠키뉴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