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한연희 (11) 제주 4형제 입양 무산… 아쉬움은 또다른 사랑을

입력 2013-06-16 17:23


제주 모슬포에 있는 한 보육원을 방문했다가 초등학생인 4형제의 가슴 아픈 사연을 들었다. 이들 어머니가 정신병원과 보호시설을 전전함에도 친인척 모두 이들 형제를 돌보지 않아 9년째 보육원에서 지내고 있다는 것이었다.

남편과 4형제를 만나러 갔더니 원장은 아이들이 잠시 우리 집에서 살 수 있도록 허락했다. 보름간 4형제와 친해진 우리 집 아이들은 이들이 집에 오게 해달라고 남편을 졸랐다. 4형제 역시 마찬가지였다. 남편 역시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그러자 남편의 결정에 주변 사람들은 차갑게 반응했다.

“4명을 또 입양한다고? 이건 가정집이 아니라 완전 시설이네.” “지금 아이들도 생각해야죠. 새로운 입양으로 그 애들이 피해를 입는 것도 분명 있으니까요. 입양 한다고 다 좋은 건 아니잖아요. 잘못된다고 누가 책임을 져요? 그저 애들만 불쌍하지.”

물론 이들의 말도 일리는 있다. 입양에 실패하면 아이만 상처 받는 게 아니라 가족 모두에게 치명타다. 그걸 모르고 입양을 9번씩 했겠는가.

“여보, 차라리 그 애들이 헐벗고 굶주리는 상태라면 명분이라도 서지 않겠어. 보육원 대신 우리에게 온다 해서 더 나은 게 있을까.”

입양 고민으로 수없이 잠 못 이루는 밤이면 남편은 자꾸만 내게 묻는다. 나는 남편의 말이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라는 걸 잘 안다. 우리 부부에겐 부모가 되어준다는 명분 외에는 딱히 설득력 있는 이유가 없었다. 그러기에 우리는 4형제의 선택을 기다리면서 좋은 부모가 되려고 노력했다. 식탁과 부엌 조리대도 늘리고 여행용 가방, 각종 보드게임도 구입했다. 어린 4형제를 사랑으로 품겠다고 마음 준비도 단단히 했다. 과천에 올라온 마지막 날, 나는 제주 4형제에게 우리 가족 구성원 모두를 소개하며 입양 결정시 주의사항을 말해줬다.

“너희들이 계속 살고 싶다면 우린 입양에 필요한 서류정리를 할 거야. 입양을 하게 되면 이름의 성이 바뀐단다. 여기 있는 사람들과 가족이 되는 거지. 도중에 가족 하기 싫다고 바꿀 수 없다는 뜻이야, 그러니까 너희가 잘 생각하고 결정해야 한단다.”

그리고 입양이 돼도 낳아주신 엄마는 계속 엄마고, 비행기 표 값이 비싸 1년에 한 번 정도 만나러 갈 수 있을 거라는 말을 해 주는데 성일이가 갑자기 끼어든다. 성일이는 그렇게 말하면 못 알아듣는다면서 자기가 가장 최근에 왔으니 한마디 하겠다고 했다.

“난 보육원에서 14년 살았고 여기 온 지 얼마 안 됐어. 우리 집과 보육원과의 가장 큰 차이점은 꿈을 이룰 수 있는 곳이라는 거야. 여기선 뭐든지 하고 싶은 걸 하게 도와줘. 이것만 기억하면 된다.”

확신에 찬 성일이의 목소리를 듣고 마음을 굳힌 4형제는 제주도에 갔다 곧 우리 집에 오기로 했다. 하지만 4형제의 작은 아버지나 외종조부 등 친인척들이 입양을 극구 반대해 모든 절차가 무산됐다. 외부에선 우리가 아픈 엄마에게서 아이들을 빼앗는 무자비한 사람으로 비춰질 수 있었을 것이다. 절대 그게 아님에도 이해하기 쉽진 않았을 거다. 우릴 언제 봤다고 덥석 믿어주겠는가. 그럼에도 아이들은 입양 가고 싶으니 제발 도와달라고 말했다.

변호사에게 조언을 구하고 청와대에 탄원서를 쓰기도 했지만 우리 힘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4형제를 위해 남편이 꾸며놓은 방은 주인이 없어 계속 텅 비게 됐다. 하지만 이 방보다 더 텅 빈 아이들의 마음이 느껴져 눈물이 핑 돌았다.

“하나님, 우리도 힘들지만 아이들이 너무 힘들어해요. 우리가 모르는 중요한 일이 있는 거 맞죠?”

2009년 그해 겨울, 하나님은 제주 4형제 대신 우리에게 계획에 없던 용민이와 운비를 주셨다. 이 일로 ‘사람이 계획을 세울지라도 그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임을 새삼 깨닫게 됐다.

정리=국민일보 쿠키뉴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