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장지영] 쿠바와 야구

입력 2013-06-16 19:00

류현진과 함께 미국 프로야구 LA 다저스의 ‘괴물 신인’으로 꼽히는 야시엘 푸이그는 지난해 쿠바에서 망명했다. 그리고 천부적 재능을 앞세워 다저스와 7년간 4200만 달러라는 대박 계약을 터뜨렸다.

현재 메이저리그에는 푸이그처럼 쿠바에서 망명한 선수들이 적지 않다. 최근 눈에 띄는 선수만 봐도 아롤디스 채프먼(신시내티), 요에니스 세스페데스(오클랜드), 알렉세이 라미레스(시카고 화이트삭스), 호세 페르난데스(마이애미) 등 10명 안팎에 이른다.

그런데 이들 선수의 망명은 정치적 이념 때문이 아니라 세계 최고의 무대인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고 싶다는 희망과 경제적 풍요에 대한 욕구 때문이다. 이를 위해 쿠바에서 직접 보트를 이용해 미국, 멕시코, 도미니카 등으로 건너가거나 국제대회 때 숙소를 탈출해 망명을 신청한다.

1959년부터 쿠바의 정권을 잡았던 피델 카스트로는 유명한 야구광으로 야구를 국가적 차원에서 지원했다. 이 때문에 쿠바 야구는 각종 국제대회에서 메달을 싹쓸이하며 아마추어 최강으로 군림했고, 선수들은 영웅으로 환대받았다. 하지만 1990년 주요 교역 상대였던 구 소련이 붕괴하면서 경제 상황이 나빠졌고, 선수들에게 주어졌던 혜택이 대폭 삭감됐다. 결국 1991년 첫 망명자가 나온 이후 쿠바 선수들의 망명 러시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150명 가까운 쿠바 선수들이 메이저리그에 왔고, 그 가운데 30% 정도가 빅리그를 밟았다. 배구, 복싱, 축구 등 다른 종목에서도 쿠바 선수들의 망명이 적지 않다. 이들 역시 대부분 경제적인 이유로 망명을 택했다.

쿠바 정부는 예전엔 망명 선수들을 ‘배신자’라며 비난했으나 요즘엔 워낙 많기 때문인지 1∼2년간 선수 자격 정지를 내리는 것으로 눈감아주고 있다. 지난 1월엔 국민의 국외여행 규제를 완화하고 1994년 이후 쿠바를 탈출한 망명자들의 입국을 허용하는 새 이민 정책을 실시, 호세 콘트레라스(피츠버그)가 망명 선수로는 처음 조국에 돌아와 대대적인 환영을 받기도 했다.

스포츠계에선 쿠바 정부가 멀지 않은 시기에 선수들의 해외 진출 족쇄를 풀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대신 해외에서 버는 소득의 일부를 세금으로 납부하게 할 것으로 예상한다. 선수들도 가족과 생이별하는 것보다는 돈을 내는 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예술 분야에서는 이런 방식이 2000년대 초반 도입돼 카를로스 아코스타와 시오마라 레이즈 같은 뛰어난 무용수들이 미국과 영국 등에서 활약하고 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장지영 차장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