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넘어 미래한국으로-(3부) 한국,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는다] ⑭ 독일 사회적기업의 토양
입력 2013-06-16 18:41
독일 최초 대안은행 GLS은행
독일 바바리아 주 아샤펜부르크에 있는 성 미하엘 루돌프 슈타이너(St. Michael Rudolf Steiner) 유치원에는 모두 52명의 아이들이 다닌다. 그러나 유치원 내부 시설은 고작 어린이 12명이 들어갈 수 있는 크기에 불과했다. 25년 전 교사 1명과 7명의 아이들로 문을 연 뒤 지속적으로 원생이 늘었지만 가난한 유치원이 적당한 크기의 건물을 구하기는 무척 어려웠다. 이자벨 에드브링크 원장은 최근 독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유치원이 만들어진 이후 우리는 계속 임시 건물을 구할 수밖에 없었다”면서 “한때는 오래된 군대 막사에서 생활한 적도 있다”고 털어놨다.
이랬던 유치원이 지난해 마침내 새 건물을 갖게 됐다. 그것도 임대가 아닌 유치원 소유의 신축 건물로, 모두 62명의 아이들이 생활할 수 있는 넉넉한 크기를 갖췄다. 독일 GLS은행이 유치원과 상담 끝에 19만2000유로(약 3억원)를 투자한 덕분이었다. 이후 몇몇 협회에서도 자발적으로 건축비를 기부하면서 건물이 완공됐다. 일부 아이들의 부모는 감사의 뜻으로 GLS은행에 계좌를 만들고 거액을 예치했다.
이 사례는 독일 최초 대안은행인 GLS은행의 영업 형태를 대변한다. ‘의미있는 일’이라는 GLS은행의 슬로건은 고객의 투자금이나 기부금이 사회를 변화시키고 있다는 의미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GLS은행의 상품 자체는 기존 영리은행과 큰 차이가 없다. 단순 예금부터 정기 예·적금, 노후 보장 상품, 대출 업무 등 일반 은행과 같은 상품을 취급한다.
차이점은 투자 대상이다. GLS은행이 지속가능한 은행 발전을 위해 세운 3대 원칙은 다음과 같다. 먼저 음식, 교육, 건강 등 사람의 기본적인 삶의 조건을 안정시키는 데 집중한다는 것이다. 또 미래 세대를 위해 자연환경을 보존하고 효율적인 업무를 통해 수익을 극대화시킨다는 원칙도 갖고 있다. GLS은행은 이를 바탕으로 환경 및 생태 보존과 사회적 환경을 개선하려 노력하는 기업을 투자 대상으로 한정하고 있다.
2011년 GLS은행의 투자 대상을 보면 분명한 특징이 드러난다. GLS은행의 교육·문화 분야 신규 투자 프로젝트는 76개의 학교와 38개의 유치원, 20개의 문화예술 프로젝트를 비롯해 모두 201개에 달한다. 신규 대출 규모만 5800만 유로(약 852억원)나 된다. 주택사업에는 339개의 프로젝트에 6000만 유로(약 880억원)를 투자했다. 101개의 건강 및 요양 시설에 3700만 유로(약 543억원)를, 317개의 재생에너지 사업에는 1억7500만 유로(약 2569억원)를 쏟아부었다.
저신용자나 서민을 위한 소액대출에도 앞장섰다. GLS은행은 2011년에만 4876개의 소액 대출로 3200만 유로(약 470억원)를 서민층에 지원했다. GLS은행의 ‘나의 소액대출(My Microloan)’ 프로그램을 통해 대출을 받은 아너드 욘씨는 바이에른주의 킴제 호수 근처에 아프리카 전통음식을 다루는 클럽을 열 수 있었다. 그는 “소액대출 덕분에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면서 “피부색과 철학, 종교가 다른 사람들이 함께 모여 즐길 수 있는 자리를 만들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GLS은행의 소액대출 프로그램에는 정부 지원도 컸다. 독일 연방노동사회부는 2010년 GLS은행의 소액대출 사업 확대를 승인하고, 유럽사회기금(European Social Fund)과 공동으로 총 1억 유로(약 1468억원)를 제공했다.
그렇다면 이 은행의 성장 가능성은 어떨까. GLS은행의 고객은 2010년 9만1292명에서 2011년 11만6427명으로 27.5% 증가했다. 총자산은 2009년말 13억500만 유로(약 2조원)였던 총 자산이 2011년 말 22억6000억 유로(약 3조3000억원)로 급증했다. 순이익도 2010년 25만 유로(약 3억7000만원)에서 2011년 33만8000유로(약 5억원)로 늘어났다.
일반 은행에선 찾아보기 어려운 ‘실적’도 있다. 2011년말 GLS은행의 연말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7개 지점, 418명의 직원의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0.93t에서 0.77t으로 감소했다. 1인당 쓰레기 배출량은 0.36t에서 0.18t으로, 종이 소비량은 0.08t에서 0.04t으로 모두 절반이 됐다. GLS은행은 전문적인 측정 프로그램을 통해 매년 자행 직원들의 환경 보호 실적을 공개하고 있다.
이 같은 노력에 따라 GLS은행은 독일 경제 전문잡지 ‘뵈르제 온라인(Borse online)’과 N-TV가 뽑은 ‘올해의 은행’상을 2010년부터 2년 연속 석권했다.
토마스 요베르그 대변인은 연말 보고서에서 “사회를 변화시키는데 돈을 쓰겠다는 열정이 없었다면 나는 절대 은행원이가 되지 않았을 것”이라며 “우리의 돈은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고 말했다.
보쿰=국민일보 쿠키뉴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