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판, 수사결과 조작 지시…“국정원 개입 의혹 벗길 방안 강구하라”
입력 2013-06-14 18:36 수정 2013-06-14 22:53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이 지난해 대선 당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당선을 위해 경찰 수사를 방해하고 결과를 조작·은폐하도록 지시한 사실이 14일 검찰 수사로 확인됐다. 그는 국가정보원 직원들의 대선·정치 관련 댓글 작업 증거를 확인하고도 “국정원의 개입 의혹을 해소해주는 발표 방안을 강구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서울청 사이버범죄수사대 디지털증거분석팀은 지난해 12월 14일 오후 8시쯤 국정원 여직원 김모씨의 노트북에서 아이디(ID)와 닉네임 30개, 인터넷 커뮤니티 운영방식, 베스트 게시물 선정 방법 등이 적힌 메모장 문서파일 1개를 발견했다. 분석팀은 이를 토대로 이틀간 철야 근무해 그들의 활동 내역을 상당 부분 파악했다.
분석팀은 지난해 12월 15일 오전 4시2분 삭제된 첫 ID와 닉네임을 찾고 환호성을 질렀다고 한다. 한 분석관은 “닉네임이 나왔다. 고기 사 달라”며 박수를 쳤고 다른 분석관은 “노다지를 찾았다”고 흥분했다. 분석관들은 “국정원이 책임이 있다. 수사팀에 알려주자”고도 했다.
그러나 이는 묵살됐다. 김 전 청장은 당일 오전 분석팀의 첫 보고를 받고 지휘라인 간부들을 불렀다. 그는 “수서경찰서에 분석 결과물을 일절 넘겨주지 말고 분석 상황과 결과를 알려주지도 말라”고 여러 차례 지시했다. 분석팀 보고서는 컴퓨터 기록이 남지 않도록 펜으로 작성하라고도 했다. 분석팀은 100여쪽 보고서를 작성했지만 김 전 청장 지시로 모두 파기했다. 자료를 파기하던 한 분석관은 “누가 보면 나라를 구하는 줄 알 것 같다”고 자조했다고 한다.
서울청 최모 수사부장은 곧바로 허위 중간 수사결과 발표계획을 세웠다. 분석팀은 16일 오후 9시15분까지 분석작업을 벌였지만 ‘혐의 없음’ 결론을 도출한 분석보고서는 당일 오후 이미 작성된 상태였다. 수서서는 16일 오후 11시 중간 수사결과 발표 때까지도 분석 자료를 받지 못했다. 검찰은 경찰의 중간수사 결과를 ‘정상적인 수사공보를 빙자해 실체를 은폐한 허위 발표’라고 결론지었다. 범행 내용만 보면 구속영장 청구 사안에 해당하지만 검찰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의 형평성을 고려해 불구속 기소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전웅빈 기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