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라동철] 산업용 전기요금 현실화해야

입력 2013-06-14 17:59


지난겨울 전기요금 ‘폭탄’을 맞았다. 준공 30년이 넘는 노후 아파트로 이사와 처음 맞은 겨울, 집안에 한기가 너무 돌아 전기난로와 전기장판을 마구 틀어댄 탓이었다.

아파트 관리비 고지서에 찍힌 전기요금이 30만원을 넘었다. 전기 사용량은 전월의 배를 조금 넘었을 뿐인데 요금은 6배였다. 전기요금 누진제의 위력을 절감했다.

주택용(저압) 전기요금은 월 사용량이 100㎾h 이하인 1단계의 경우 1㎾h에 59.1원이지만 사용량이 늘수록 단위요금은 급격히 상승한다. 1㎾h에 2단계는 122.6원, 3단계는 183.0원, 4단계는 273.2원, 5단계는 406.7원이다. 500㎾h를 초과한 6단계에서는 1㎾h당 690.8원이 적용된다. 같은 1㎾h지만 6단계는 1단계보다 요금이 11.7배나 높다.

이 사실을 확인한 우리 가족 4명은 군말 없이 그날부터 절전모드로 들어갔다. 전기난로를 거실과 방에서 치웠고 집에서도 두꺼운 파카를 입고 지냈다. 잠도 안방에서 모여 자며 그렇게 한 달을 버텨 다음 달 전기요금을 5만원대로 낮출 수 있었다.

개인적인 경험을 떠올린 건 최근 전력난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다. 올여름은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것으로 예보돼 냉방기(에어컨) 사용도 급증할 전망이다. 고장과 불량부품 납품비리 등으로 원전 가동까지 무더기 중단돼 블랙아웃(전국 규모의 정전) 가능성도 제기된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은 앞다퉈 여름철 절전수급대책을 내놓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달 말 공공기관 전력 20% 감축, 피크시간대 요금 3배 할증, 절전 인센티브 지급 등이 포함된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서울시도 7, 8월 두 달 동안 지하철 운행간격을 연장하고 실내 냉방온도(섭씨 26도) 제한규정을 위반하거나 냉방기를 켠 채 문을 열고 영업하는 업소에 최대 3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등의 대책을 제시했다.

전력난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들이다. 이런 대책들은 없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임시방편 격이다. 매년 여름·겨울철이면 반복되는 전력난을 해결하려면 근본대책이 강구돼야 한다.

밀양 송전탑 사태에서 알 수 있듯 엄청난 경제적·사회적 비용이 들어가는 공급확대 정책은 답이 아닌 것 같다. 가격정책을 통해 전력수요를 억제하는 방향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전기 과소비를 부추기는 왜곡된 전기요금 체계를 바로잡는 게 그래서 중요하다.

우리나라 전력소비는 2000년대 들어 가파르게 상승했다. 2005년부터 2010년까지 전체 전력소비 증가율은 30.6%였다. 산업용이 33.0% 증가하며 흐름을 주도했다. 산업용은 전체 전력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11년 기준 55.3%에 달한다.

산업용 전기요금은 주택용이나 일반용(상가, 사무실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싸다. 누진제도 적용되지 않는다. 1㎾h당 전기요금은 주택용이 평균 105.1원, 일반용 101.7원인 반면 산업용은 81.2원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전기요금은 원가의 89% 수준이다. 값싼 전기요금은 낭비를 부추기기 마련이다.

원가보다 싼 전기요금의 혜택을 주로 대기업들이 누리고 있다. 전력사용량 상위 20개 기업이 전체 산업용의 30%를 소비한다. 이들 중에는 엄청난 수익을 내고도 현금자산을 회사 곳간에 쌓아둔 채 투자와 고용을 외면하는 곳들이 적지 않다. 수출역군인 산업계는 특별 배려해야 한다는 논리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 산업용 전기요금 현실화로 인해 부작용이 우려된다면 보완책을 마련하면 된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라동철 사회2부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