뾰족한 첨탑 위 붉은 십자가,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긴의자에 모여 앉아 예배드리는 성도들.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교회의 내·외부 모습이다. 하지만 지난 12일 서울 서교동의 단독주택 지하에 모인 ‘교회잉크’의 예배 모습은 달랐다. 교회가 ‘온더페이퍼’라 명명한 작은 공간에 모인 5명의 성도들은 기도모임 시작 전 김용노(42) 목사와 격의 없이 어울리며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았다.
대화를 나눈 뒤 시작된 기도모임에서 김 목사의 설교를 듣는 성도들의 표정이 자못 진지했다. 여느 교회의 예배와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1년여 전 이 교회에 왔다는 김진현(28)씨는 “어릴 때부터 다니던 교회가 분열돼 신앙생활에 어려움을 겪던 중 교회잉크를 알게 됐다”며 “교회 건물이 없어 주일엔 스튜디오를 빌려 예배를 드리지만 목사님 말씀이 좋고 이전교회보다 성도 간 돈독함도 더 느껴 여기에 정착했다”고 말했다.
2011년 이 교회를 개척한 김 목사는 “홍대의 문화예술인과 휴일에 바쁜 서비스직 종사자, 여러 이유로 교회를 떠난 이들에겐 종교의식보다 신앙 공동체가 절실하다”며 “화려한 도시에서 소외된 이들이 믿음을 회복토록 주중 예배와 기도모임을 확산시켜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사회 구성원 눈높이에 맞춘 목회
사회구성원이 다양해지고 생활양식이 다변화되면서 지역이나 세대·계층 간 특색에 맞게 창의적인 목회를 시도하는 교회가 늘고 있다. ‘특수 목회’로 분류되는 이들 사역은 장애인·노숙인 등 소외 계층부터 군인, 직장인, 이주노동자·결혼이주여성, 비행 청소년까지 여러 사회구성원 각각의 필요에 맞춘 목회로 진화되고 있다.
특수 목회는 누구나 교회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목회신념에서 비롯됐다. 교회 건물 안에서 정기적으로 출석하는 성도에게 신앙을 지도하는 일반 목회와 구별된 개념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특수 목회와 일반 목회의 경계가 점차 모호해진다고 진단했다. 정재영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종교사회학 교수는 “이전엔 일반 목회 이외 모든 사역을 특수 목회라 불렀으나 지금은 명확히 구분 짓기 어려워졌다. 사회구성원의 종교·신앙적 욕구가 다양해져 여러 형태의 교회가 등장했기 때문”이라며 “이러한 ‘틈새교회’는 기성교회가 채워줄 수 없는 욕구를 채워주므로 앞으로 그 수가 더 늘 것”으로 내다봤다.
성경에서 특수 목회를 직접적으로 설명한 부분은 없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교회가 고아와 과부, 나그네를 돌본 것과 이방인에 대한 할례 등의 종교적 전통을 선택적으로 적용한 부분 등에서 특수 목회의 근거를 찾는다. 김영래 감리교신학대학교 기독교교육학 교수는 “성경에서도 인종·계층·지역별 특수성에 따라 종교적 전통을 각 교회에 다르게 적용한 사례가 있다”며 “시대마다 필요한 교회 모델은 변하므로 전통적 형식인 일반 목회만 성경적이라 볼 순 없다”고 설명했다.
교회, ‘특수한’ 이들을 품다
교회가 사회에 필요한 사역을 시도하면서 점차 특수 목회의 외연도 넓어졌다. 1991년부터 이랜드 사목(社牧)을 지낸 방선기(61) 목사는 “이전엔 교계에서도 목사가 회사에서 무얼 할 수 있는지 회의적으로 보는 분들이 적지 않았다”며 “하지만 지금은 종교와 관계없이 회사생활의 고충을 위로하고 직원의 영적 상태를 돌보는 역할로 인식돼 사목을 지망하는 목회자가 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항공선교회 제1호 항공선교사인 신일덕(74) 선교사도 특수 목회를 하면 복음이 더 잘 받아들여진다고 했다. 신 선교사는 “11년간 의사와 함께 의료품을 싣고 백령도, 연평도, 도초도 등 섬에 가 3500명을 진료하고 450명을 전도했다”며 “외지인이 비행기와 배를 타고 와 설교하고 봉사하는 모습에 감동해 현지 교회에 등록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힙합을 좋아하는 이들을 위한 ‘힙합교회’도 있다. 원스피릿교회는 힙합 음악과 문화에 친숙한 청소년과 청년층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래퍼인 왕현규(34) 전도사가 올해 1월에 세운 교회다. 실용음악강사로도 활동했던 왕 전도사는 주말엔 예배 설교를 하고 주중엔 힙합 소모임을 이끌고 있다. 왕 전도사는 “함께 음악작업을 하는 10여명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으로, 이들 가운데는 소년원에 다녀왔거나 편부모 가정인 경우가 꽤 많고 몸에 문신을 새긴 이들도 적지 않다”고 소개했다. 그는 “예배를 힙합 무대로 만들지는 않지만 평일에 이들과 어울리며 예수의 사랑에 대해 설명하려 노력한다”며 “이들은 문제아라 생각했던 자신을 교회가 편견 없이 받아주고 친구가 돼 줄 때 마음의 문을 연다. 앞으로 예수만이 희망임을 음악과 말씀으로 알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유인적 교회’가 아닌 ‘선교적 교회’로
특수 목회의 외연 확장으로 새로운 교회 모델이 빠르게 늘면서 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두 가지로 나뉜다. 바람직한 시도로 보는 시도로 보는가 하면 이러한 추세를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정 교수는 “기존 교회의 틀에 벗어난 새로운 교회 가운데서는 새벽예배와 수·금요일 예배를 전혀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며 “이 때문에 ‘과연 교회가 맞나’ ‘교회가 예배를 버린 게 아닌가’라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모두에게 교회 전통을 강요한다면 모든 이에게 다가갈 수 없다”며 “섣부른 변화도 문제지만 교회도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해 문턱을 낮추려는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 교수는 특수 목회는 여러 의미로 ‘소외된 자’를 돌보려는 선교적인 목적에서 진행하는 것이므로 기존 교회가 이들을 더 격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보여주기 식의 특수 목회는 곤란하다고 했다. 그는 “선교적 목회(Missional Ministry)는 삶 속에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 변화된 교회 형태이나 유인적 목회(Attractive Ministry)는 사람의 눈길을 끌기 위해 바꾼 것으로 의도 자체가 다르다”며 “특수 목회를 유인책으로 생각하면 교회의 본질을 훼손할 수 있기 때문에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목회의 블루오션 특수 목회] 힙합·항공목회 아십니까
입력 2013-06-14 17:10 수정 2013-06-14 13: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