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기증 현주소] 2012년 1312명 새생명 찾았다

입력 2013-06-15 04:01


지난해 뇌사자 장기 기증이 처음 400명을 넘어섰다. 2011년 6월 의료인의 뇌사 추정자 신고 의무화를 담은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 시행과 지난해 8월부터 뇌사자 기증 활성화를 위한 ‘DA(Donor action)’ 프로그램 도입의 영향이 컸다는 분석이다.

14일 보건복지부와 한국장기기증원(KODA)에 따르면 지난해 409명의 뇌사자가 기증한 장기로 1312명의 꺼져가는 생명이 희망의 불씨를 지폈다. 뇌사자 1인당 평균 3.21개의 장기(각막 제외)가 이용됐다. 뇌사자 1명은 최대 9개의 장기(심장·폐·간·신장·소장·췌장·췌도·각막·골수)를 줄 수 있어 이식 가능 장기가 제한적인 생체 기증보다 훨씬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다.

따라서 연평균 10%씩 늘고 있는 장기 이식 대기자를 충당하려면 뇌사자 장기 기증을 더욱 확산시켜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올해 1월 말 기준 국내 장기 이식 대기자는 2만2987명이다.

국내 뇌사자 장기 기증은 2002년 36명이던 것이 2006년 141명으로 처음 100명을 넘었다. 이후 2008년 뇌사로 숨진 권투선수 최요삼씨의 장기 기증 효과로 200명을 돌파한 뒤 3년간 정체됐다가 2011년 큰 폭으로 상승해 300명을 넘어섰다. 같은 해 6월 뇌사 추정자 신고 의무화법 시행이 기폭제가 됐다. 이는 뇌사로 추정되는 환자를 진료한 의료진은 KODA로 반드시 통보해야 하는 제도다. KODA는 “법 시행 전 월 20∼30건이던 뇌사자 추정 신고가 시행 후 월평균 85건으로 크게 늘었고 실제 기증으로 이어지는 사례도 많아졌다”고 밝혔다. 또 지난해 8월 일선 의료기관에 DA프로그램을 시범 도입한 이후 이 같은 추세는 더욱 뚜렷해져 뇌사자 추정 통보가 월평균 109건에 달하고 있다. DA프로그램은 보다 빠른 시점에 뇌사 추정자 통보(early point call)를 위해 병원 중환자실 및 응급실 등에 24시간 콜 시스템을 구축하고, 장기기증 코디네이터가 환자 의무기록을 열람토록 해 적극적인 잠재 뇌사자 발굴에 나서는 것이다. 또 병원 내 DA위원회를 두고 의사와 간호사 교육 등을 지속적으로 시행해 ‘잠재 뇌사자’에 대한 인지도를 높인다. 미국, 프랑스, 스페인 등 선진국에서 시행되고 있다.

DA프로그램을 시행 중인 순천향대병원 장기이식센터 전진석 교수는 “실제 이식외과나 신장내과 의사가 아니면 뇌사자 장기 이식의 중요성을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신경외과, 마취과, 중환자실 대상으로 교육을 실시한 이후 의료진의 관심이 크게 높아졌다”면서 “앞으로 병원 전체 직원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병원의 경우 2011년 1건에 불과하던 뇌사자 추정 신고가 지난해 14건, 올해 4월 말까지 12건이 이뤄졌다.

하지만 KODA와 DA프로그램 협약을 체결한 의료기관은 14일 현재 전국 31곳에 불과하다. 뇌사 발생 가능 의료기관 456곳의 6.8%에 그치고 있다. KODA는 올해 안에 6곳의 의료기관과 추가 협약을 체결하는 등 프로그램을 확산시켜 나갈 방침이다. KODA 장경숙 기증지원 국장은 “의료진이 뇌사와 식물인간의 차이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고, 뇌사 기증을 원하는 환자가 생겨도 장기 기증 절차를 몰라서 이뤄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면서 “보다 많은 뇌사자 발굴을 위해선 DA프로그램을 병원이 의무적으로 도입토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뇌사 기증에 대한 정서적 거부감이 여전한 것도 문제다. 지난해 뇌사 추정자로 신고된 1126건 중 실제 장기 기증으로 이어진 것은 36.1%(414건·지난해 통보 및 기증 407건+지난해 통보, 올해 기증 7건 포함)에 불과했다. 장기 기증에 실패한 712건 가운데 가족 등의 기증 거부가 45%(318건)로 가장 높았다. 뇌사 기증에 대한 인식 개선과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우리나라 인구 100만명당 뇌사 기증은 2011년 기준 7.2명으로 스페인(35.3명), 미국(26명), 프랑스(24.7명) 등에 비해 턱없이 낮다. KODA 하종원(서울대 의대 교수) 이사장은 “의대 및 간호대는 물론이고 초·중·고 교과 과정에서도 장기 기증의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가르치고 기증자 기념공원 설립, 다양한 유가족 예우 프로그램 등을 통해 장기 기증에 대한 사회 전반의 인식개선이 이뤄지도록 국가 중점사업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