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방송국 폐쇄 정치쟁점
입력 2013-06-13 19:26
긴축재정을 위해 공영방송국을 전격 폐쇄한 그리스가 거센 후폭풍을 맞고 있다. 폐쇄 반대여론이 정치쟁점으로 확산되면서 연정 붕괴 가능성까지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13일 BBC 등에 따르면 그리스 집권 우파 신민당이 연정파트너들과 상의하지 않고 공영방송국인 헬레닉(ERT)을 폐쇄하면서 파트너들이 반발하고 있다. 연정 내 2대 지분을 가진 온건좌파 사회당(파속)은 성명을 내고 “정부의 방송국 폐쇄 조치를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또 다른 연정파트너인 민주좌파 역시 “ERT의 구조조정을 지지하지만 폐쇄라는 방법은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민주좌파는 방송국 폐쇄를 담은 정부의 행정명령을 취소하는 결의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지난해 10월 스위스 은행에 거액을 예치한 그리스인 명단 유출사건으로 한 차례 홍역을 겪은 연립정부가 이번 사건으로 붕괴될 가능성마저 노출한 것이다.
여기에 제1야당인 급진좌파연합(시리자) 역시 방송국 폐쇄를 “쿠데타로 표현해도 과장된 게 아니다”며 “방송국 폐쇄는 불법”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정치권 외에도 그리스정교회도 우려를 나타냈다. 그리스 양대 노조를 비롯해 언론인 노조는 13일 24시간 동조파업에 돌입해 민간 방송 진행에 차질을 빚었다. 그리스 공항은 2시간 동안 운영을 중단했다.
졸지에 실업자가 된 2655명의 ERT 소속 기자와 직원은 본사 건물을 점거한 채 인터넷TV를 통해 뉴스를 내보내고 있다. ERT 노조는 “정부가 진압경찰과 다른 수단을 동원해 방송 송출을 막고 있다”며 “우리는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집권 사회당 출신인 안토니스 사마라스 그리스 총리는 ERT를 향해 “투명성 부족과 낭비의 전형”이라며 폐쇄 정당성을 역설했다. 그리스는 ERT 소유 3개의 채널을 폐쇄하고 구조조정을 단행한 뒤 수개월 내에 공영방송을 재출범시키겠다고 밝혔다.
방송국 폐쇄조치는 국제통화기금(IMF) 대표단이 실사를 위해 아테네에 도착한 다음날 이뤄져 IMF를 의식한 조치라는 분석이 나온다. 그리스는 IMF 등에 올해 공공부문에서 4000명, 내년에는 1만5000명을 감축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이제훈 기자 parti98@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