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제윤 “칼 든 리더십·강압적 官治는 없다” 했지만…

입력 2013-06-13 18:34 수정 2013-06-13 22:05

정부가 민간 금융기관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관치금융’을 둘러싸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금융당국 수장인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강압적 관치는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금융권은 책임회피용일 뿐 ‘어쨌든 관치는 하겠다’는 뜻이라고 받아들인다.

◇‘칼 든 리더십’은 안 하겠다?=신 위원장은 13일 서울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오피니언리더스클럽 조찬 간담회에 참석해 “과거처럼 칼을 들고 존재감을 나타내는 리더십은 안 하겠다”고 말했다. 최근 STX, 쌍용건설 등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불거진 금융당국의 역할 논란에 대해 입장을 밝힌 것이었다. STX그룹 계열사인 STX팬오션은 금융당국이 채권단을 설득하지 못해 결국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투자자들이 입을 피해는 1조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신 위원장의 ‘칼 든 리더십’ 거부 선언은 표면적으로 금융당국이 특정 기업을 살리기 위해 금융회사의 팔을 비틀어 돈을 대도록 하진 않겠다는 뜻이다. 또 금융지주 회장에 고위 경제관료 출신 인사들이 잇따라 임명되는 것에 대한 비판에 부담감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신 위원장은 전날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당국의 관치금융을 지적하는 의원들의 공세로 한바탕 곤욕을 치렀다.

◇관치, 뭐가 문제인가=관치금융은 1960년대 박정희 군사정부가 ‘금융기관에 대한 임시조치법’ 제정 등으로 금융권을 장악한 뒤 예산과 인사, 금리, 대출 등 모든 부분에 간여하면서 등장한 용어다. 관련법 폐지 후 시중은행은 정부의 손에서 벗어났지만 이는 형식에 불과했다. 정부는 감독·제재 권한을 갖고 계속 개입했다. 금융회사들은 관료로 부터 전화 한 통을 받고 요건도 안 되는 기업에 거금을 대주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정경유착 없이는 사업하기 어려웠던 시절이다.

관치금융은 정부가 육성하려는 특정 분야에 자금을 집중시켜 단기간에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압축성장’에 유리하다. 경제가 체계를 갖추지 못한 산업발전 초기 단계에나 가능한 얘기다. 산업화가 진행돼 경제 시스템이 복잡해진 상황에서는 정부가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없다.

관치금융의 문제는 제한된 자원이 꼭 쓰여야 할 곳에 쓰이지 않고 정부 입맛에 좌우된다는 데 있다.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노리는 시장경제의 기본 원칙이 무시되는 구조다. 문제가 누적되면 경제 시스템이 훼손되고 국민이 그 피해를 떠안는다. 90년대 말 몰아친 외환위기가 관치금융의 대표적 폐해다.

정책금융의 성격이 강한 관치는 선진국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독일의 경우 지역에 기반을 두고 중소기업·서민금융에 강한 은행을 정부 주도로 키워왔다. 다만 우리의 관치금융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래도 여전한 관치=외환위기 이후 정부는 시장 자율을 강조하며 꾸준히 금융개혁을 진행했다. 한국에 돈을 빌려준 국제사회가 시장개방을 강하게 요구하며 등을 떠민 탓도 있다. 하지만 관치는 방법, 정도만 달라졌을 뿐 명맥을 유지했다. 정책을 추진해야 하는 정부로서는 금융기관만큼 요긴한 자금 조달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당국이 금융기관을 강제로 끌고 가는 식의 노골적 관치는 이제 찾아보기 어렵다. 대신 금융기관 수장을 비롯한 요직에 정부 관료 출신을 내려 보내는 ‘낙하산 인사’로 금융권을 장악하고 있다. 정부 측 인사가 의사결정권자인 금융기관은 강제하지 않아도 당국 방침을 따르기 때문에 잡음이 일지 않고 외부에서 보기에도 좋다. 주요 금융기관 수장 상당수가 ‘모피아’로 불리는 경제 관료 출신 인사들이다.

관치에 대한 정부의 욕심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은 “관은 치하기 위해 있다”는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의 발언이 대변한다. 후임인 신 위원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게 금융업계 평가다. 이날 조찬 간담회에서 신 위원장은 최근 금융감독원이 이장호 BS금융지주 회장에 퇴진 압력을 넣은 게 정당하냐는 질문에 “감독당국이 최고경영자 리스크(위험요인)가 있다고 지적했다”고 답했다. 정당했다고 인정한 것이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